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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02. 2023

소음에 대해서

나무인간 24

2022년 5월 24일


 이른 새벽에 세상은 고요한 것 같지만 소리는 잠시도 멈추는 법이 없다. 속삭임, 혼잣말, 탄식과 탄성, 잡담과 농담, 비난과 욕설, 비명과 아우성, 주장과 명령, 하나 마나 한 빈말과 말이 아닌 말, 앵무새처럼 외워서 하는 말과 지켜지지 않을 약속의 말들, 누군가가 시켜서 할 수 없이 하는 말과 침묵을 견딜 수 없어서 하는 말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쉴 새 없이 생겨난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물들도 저 나름의 소리를 내고 자연은 자연대로 소리를 낸다. 천둥과 비바람과 파도 소리가 있고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있고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는 소리가 있다. 공간은 마치 낱장으로 분절된 책처럼 이 모든 소리를 분리하여 우리가 원하는 소리만 듣게 한다. 그 밖의 모든 소리는 차단되거나 미세한 소음으로 문밖에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가 듣고자 하는 말이나 음을 위해서 정적과 침묵은 빛과 같고, 소음은 그 소리를 집어삼키는 어둠과 같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만드는 소리의 총량이 끝없이 증가하고 우리에게 허용되는 고요함의 공간, 정적의 총량이 끝없이 감소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리들은 의미가 되지 못한 채 우리의 입에서 흘러나와 소비되는 소음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잡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럴수록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더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저마다 내는 더 큰 소리들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이 악순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결국 우리는 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의미한 말을 줄이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중 소음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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