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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01. 2023

애매한 너무 애매한

나무인간 16

2021년 8월 29일


나는 포지션이 애매하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현재 예술가도 아니고, 전시기획자로 입문했지만 쉬고 있다. 그나마 미술가치곤 땅에 붙어 있는 글을 쓰며 2년 전까지 조금 활동한 게 전부다. 한마디로 어중간하다. 최근 후배의 전시에 들렸다가 생경한 경험을 했다. 알 수 없는 무시. 직관이 매우 발달한 후배는 나이가 찰수록 삶의 태도가 분명해진다는 느낌이다. 내가 어중간해서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들 사이에선 소위 잘 나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의문이지만 도대체 예술가에게 잘 나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잘 나가는 사람은 어느 시절이나 있고, 시기와 험담으로 자신들의 결여를 해소하려는 예술가들의 험담은 언제나 존재했다. 즉 ‘잘 나가는 예술가'와 '잘 나가지 못하는 예술가'는 상생했다는 뜻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계의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태도로 세상을 단정 짓는 예술가는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그런 예술가들 중 끝까지 잘 나가는 작가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지겹다. 예술가들의 사고와 세계관, 읽다 보면 현기증이 난다. 그날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그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현재 내 위치에 불만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나를 존중하지 않은 까닭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위치를 위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진 않다. 그림을 그리면 나는 분명히 동굴로 들어갈 테고 그것은 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향한 배려가 아니다. 기획자로 살아남기에도 서울시와 대한민국 정부가 극도로 금기시하는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려 하니 재단과 인연이 없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꾸역꾸역 마음에 총알을 모아서 내 이야기를 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되새긴다. 나는 이제 순수미술작가들과 거리가 있다. 그것이 미적 거리감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들을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분간도 내 포지션은 애매하고 어중간할 것이다. 존 버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디가 선 햄버거가 돼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페북에 논의는 쓰기 싫고 일기는 창피하고 에세이는 가식 같고... 모르겠다. 죽고 싶지만 장수, 지평, 느린 마을 막걸리는 각 1병씩 마시면서 동시에 지구환경도 지키고 싶은- 막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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