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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n 30. 2023

럭셔리 호텔

나무인간 15

2021년 6월 8일


또 육만 원짜리 럭셔리호텔에 왔다. 이젠 여러 핑계를 떠나 상습적으로 마음을 다치면 강멍 때리러 온다. 글은 한두 시간이나 쓸까.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강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고 웃고, 밀린 영화와 책 보고 울고, 기니스와 와퍼를 먹고 취해 기절한다. 그리곤 새벽 두 시경 깨서 여의도 따라 흐르는 까만 안양천 보고, 미완의 월드컵대교 보고, 그렇게 하릴없이 폐쇄된 개방감에 취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어젠 어플로 방을 예약하려니 내가 원하는 타입의 방이 모두 만실이었다. 이상해서 체크인 때 리셉션에 물었더니 직원은 야구단 두 팀이 들어와서 빈방이 없다고 했다. 뉴스를 검색했다. 황금사자기 전국고교대회가 눈에 들어왔다. 양산시에서 온 대형버스를 주차장에서 보긴 했는데 양산고등학굔진 알 수 없었다. 목동야구장에서 가장 가깝고 싸고 전망 또한 근사해 지자체 예산으로 이만한 숙박시설도 없었겠지. 세 시에 칼 같이 체크인하고 네 시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와 와퍼를 먹으며 리모컨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누가 내방을 두드렸다.  문을 열었더니 나를 위아래로 살피곤 대뜸 "코치님~" 이렇게 부르며 방으로 들어오려는 어린 학생이 눈앞에 서있었다. 누가 봐도 고등학교 일 학년, 안경을 썼고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고 운동선수치 곤 조금 긴 머리에 체격은 왜소했다. 그 학생은 왠지 모르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이 본 적도 없는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나는 학생에게 "저는 코치 아니에요. 방을 잘못 찾으신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문을 닫고 돌아서며 나는 처음 본 어린 운동선수의 눈빛에 알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고해성사를 원하는 죄인의 눈빛이 그럴까. 오늘 아침 적을 수 없는 문장 몇 개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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