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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n 30. 2023

음악 싫어합니다

나무인간 11

2021년 3월 14일


지난겨울, 페이스북에 음악을 싫어한다고 썼더니 친한 후배가 형 생각났다며 카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를 선물했다. 냅다 읽긴 했는데 진부하고 진지한 혐오는 결국 저자의 애증이라는 역설과 함께 음악이 왜 인간만의 모순인지 곱씹는 계기 정도가 됐다. 기대치가 너무 컸다. 요 며칠 주변으로부터 생각보다 음악을 다양하게 많이(?) 안다는 괴상한 칭찬을 들었다. 기분이 아주 괴랄맞았다.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란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살면서 나는 정작 음악을 피하지 않았다. 다가가지도 사랑에 빠진 적도 없다. 존재감이란 표현이 더 적확하겠지. 별도리 없이 거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돌아보면 그림자 같은 무엇, 한편으로 잡스런 소음보다 그래도 나름 걸러진 호기심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80년대 일본음악과 야쿠자 영화에 손이 갔다. 요시키의 드럼 비트와 자드의 서글픈 시티팝, 사랑 없이 사랑을 노래하는 엔카 노랫말 사이 야쿠자 아내들의 암투와 가짜 피, 작위적 반동의 러시아제 권총이 머릿속에 흘러 다녔다. 이런 이상한 치정극의 프로세스는 결국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로 내게 귀결됐다. 잘 만든, 왜 그가 J.D 샐린저인지 보여주는 영화. 다시 읽을수록 무서운 책이 있다. 이방인, 호밀밭 정도가 내게 그렇다. 늘 생각하지만 많이 안 써도 된다. 나다운(être soi-même) 글 하나면 족하다. 샐린저에겐 인간을 항한 오랜 침묵이 서사이고 음악이었을 것이다. 단지 격하게 조용히 지내는 것. 사는 모양을 꼭 목소리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조금씩 굳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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