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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n 29. 2023

각성

나무인간 10

2021년 3월 26일


상처받을 각오로 스스로에게 걸어가는 일은 사실 불가능할지 모른다. 세상엔 거울이 존재하고 그 거울을 보지 않는 인간은 없다. 아래에 적은 스스로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억지나 다름없다. 내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이미 내린 결정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세뇌효과. 이에 따른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개인은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메서드 연기를 하면서 생을 이어가면 그만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 '너는 제법 진정성이 있다'거나 또는 '정직하다'라고 한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이와 유사한 일을 살면서 경험했다. 그러나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 아니기에 그저 타자를 향해 겸손히 웃어 보이면 그만이다. 나는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므로 남을 향한 연민 그 종국에 투과된 매개를 통해 나를 볼 뿐. 거울로서 자격이 없는 인격을 향한 애정은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감정은 언제나 폭발적이고 위험하지만 그것을 차분히 준비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 각오는 대기(大氣)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 붙어 있는 생의 배우가 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연기 내내 땅에 그 기류를 붙잡아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나치게 부유(浮遊)한 공기 같아 배우의 생도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 그것을 관객들은 공감이라 부를 것이다. 마음에 마음이 쌓이면 결국 무거워지고 성질이 다른 두 기압이 충돌하듯 눈이나 비가 되어 땅에 떨어진다. 그 후의 에필로그는 각자의 몫이다. 스스로에게 걸어간 몫은 누군가로부터 나에게 전이된 갈등이 적당한 에너지로 응고돼 길 위에 떨어진 각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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