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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n 29. 2023

텅 빈 극장

나무인간 9

2021년 2월 26일


객지 손님을 기다리는 청초호 주변 식당들은 외롭다. 무조건 2인분이라는 유명 생선구이집에 들렀다가 허영만 아저씨를 원망했다. 70년 된 원조 함흥냉면과 오징어순대를 씹으며 실향민의 음식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갯배를 기다리는 관광객들, 추운 날 그들의 아무것도 아닌 호기심을 위해 호 귀퉁이에서 언제 사라져도 그만일 역사를 홀로 끄는 노인. 검은 손톱 사이로 어망을 정리하는 늙은 어부들 몇. 항구 어디에도 한국인 총각은 없었다. 바로 뒤 시내엔 술 파는 노래방 같은 게 굉장히 많았는데 대부분 닫은 지 오래돼 보였다. 호 주변엔 언제 주차했는지 모를 낡은 승용차가 빼곡했다. 청초호에 이는 물살은 이른 새벽 출항하는 오징어배나 정비 차 복귀하는 배들의 것이 전부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날엔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춘천으로 떠나는 날 오전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한전 속초지사 앞에선 시위가 있었다. 한전 측이 이재민들에게 약속한 배상을 빨리 이행하라는 것이 마이크 잡은 시위자의 논조였다. 터미널 안쪽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하는 와중에 11시 30분이 되자 경찰도, 쩌렁쩌렁한 시위대도 모두 사라졌다. 텅 빈 극장 같았다. 속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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