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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n 29. 2023

빌렘을 오역하다

나무인간 8

2021년 1월 7일


빌렘을 오역하면 저자는 글을 쓰면서 그의 글에 의해 부조리해지거나, 부조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혹은 그 자신이 부조리되는 광경을 스스로 목도해야 한다. 선박 뱃머리를 붙잡고 침몰하는 선원처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은 내외부에 대한 유연한 경계가 애초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간은 글을 쓰면 쓸수록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지정학적으로 초라한지 확인할 뿐이다. 그 까닭에 준비된 저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카뮈의 말처럼 부조리한 인간으로서 그 고통을 평생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러면 그 경계를 허물려는 저자의 사투의 끝 어딘가에 어린 유아 형태의 시지프가 다시 태어난다. 이 부활의 반복이 글쓰기의 몸짓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텍스트가 종국에는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이기적이고 일시적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이타적 이유론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빌렘의 지적은 우리의 노력이 한편으로 얼마나 허망하고 허황된 짓인지 반증한다. 글을 쓰는 순간 인간은 바로 그 고통과 부조리의 세계 일부가 아닌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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