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인간 4
2020년 10월 8일
9월 29일, 청주에 왔다. 학교는 방학 때 같았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에게 이율 물으니 연휴 바로 전이라 많은 수업이 휴강이라고 했다. 올해 실기수업 외 대부분 강의가 비대면으로 이뤄져 학교생활에 다들 흥미를 잃은 듯 보였다. 학교중독인 나로선 그런 풍경이 유감이었다. 어쩌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글쓰기인지 작업크리틱인지, 정체미상의 특강을 마치고 터미널로 가려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올드팝을 듣고 있었다. 보통 교통방송이나 인기 라디오 채널을 틀기 마련인데 지역이라 그런지 서울과 다른 여유가 나에게 조금 낯설었다. Love Me Tender가 흘러나왔다.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를 칭찬하는 기사를 거들었다. 우리는 곧장 대화를 이어 갔다. 왜인지 그날 올드팝을 듣는 택시기사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기사는 일이 끝나면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 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뻔한 질문에 응당한 답변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이 미안했다. 잠시 LP판 모으는 게 취미였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택시기사보다 더 오래된 연주곡이나 서부영화음악을 좋아했다. 일요일이면 우리 집은 언제나 대청소를 했는데 아침 10시면 잠이 덜 깬 나와 동생은 서부의 무법자나 황야의 7인 같은 영화 음악에 강제기상을 해야 했다. 군대 기상나팔처럼 괴로웠다. 그 시절 보았던 수많은 LP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와 20대 이후 제대로 된 연락을 나눈 적이 없으니 모를 일이다. 더 이상 나와 가족 앞에 '서로'라는 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내게 그것은 인간의 소리구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귀가 아프다. 초등(국민) 학교 땐 엑스재팬 음악을 크게 들으며 잠들기도 했는데 지금 이런 내 모습은 다소 어이가 없다. 가끔 스스로 가라앉는 날이면 류이치 사카모토나 강주미 씨의 연주를 유튜브로 듣는다. 고작 그게 전부다. 재밌는 건 아버지는 팝송을 즐겨 들었지만 정작 영어를 잘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팝판이 가요판보다 월등히 많았다. 짐작건대 그에게 음악이란 언어보다 가수의 목소리나 곡의 멜로디와 박자감 같은 요소가 뒤엉킨- 삶을 보상받는 일종의 소리에너지였을 것이다. 음악의 순기능이 그렇다. 가사를 모니터에 띄우고도 읽을 필요 없이 엘비스를 흥얼거리는 저 택시기사처럼. 음악(예술)은 그 정서만으로도 인간을 충분히 돌본다.
충북대에 학기마다 특강을 나간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매번 새롭지 않은 학생들을 대면한다. 서로에 대한 기대 탓인지 실망이라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나는 그 평범한 위안에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 이런 매너리즘적 청각장애를 나 자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학생들에게 단지 착한 사마리아인일 것이다. 그들을 도울 뿐 이해하지 않는- 흡사 가족을 대하는 나의 모습처럼.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추석 아침 적당히 화 난 어조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아버지였다. 당신께 할 말이 없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의 음악에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