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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Oct 27. 2023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 1 나의 이야기

 두 달째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나를 피한다. 말도 건네지 않는다. 

부지런히 밥상을 차려놓지만 손도 대지 않는 날이 계속된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참는다. 또 치밀어 오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려고 하는지. 피가 마른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퇴서를 냈다. 

본인이 원하는 삶이 학교에 있지 않아서 좀 더 빨리 자기의 길을 찾아가겠다고 학교를 나왔다. 

동의했다. 이해도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용기가 부러웠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멀고도 멀었다. 

머리로는 학교를 나온 게 이해가 되는데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날로 예민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는 짓을 서슴없이 했다. 


 나는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열 달을 뱃속에서 품었고, 낳았고, 먹였고, 키웠기에. 17년 동안 같이 살았기에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리석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그녀가 아니다. 

그녀 안에 숨어있는 욕망들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저 그녀를 통해 나의 욕망만을 봤을 뿐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나를 버리고 희생해야 되는지 생각할 때 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욕심이 나의 삶을 좀먹는 것 같아 떨쳐버리고 싶다. 

빨리 독립해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  


# 2 그녀(딸) 이야기

 억울하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내 생일인데 왜 미역국을 먹지 못하는지. 잘난 오빠 재수가 내생일이랑 뭔 상관이 있다고 미역국도 안 끓여 놓는지. 내 생각이 맞다. 엄마는 오빠만 편애한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생일날 아침에 맞았다. 분하다. 죽고 싶다. 

아침내내 분해서 울었다. 그러다 그냥 집을 나왔다. 스터디카페에 갈까 하다가 친구한테 톡을 했다. 시원한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계속 집에서 문자가 온다. 짜증난다. 읽지 않고 스킵 해 버린다. 

날이 저문다. 집에 들어가기 싫다. 어디로 가야하지. 친구가 내일 학교재량 휴일이라고 한다. 친구 집에서 저녁을 보내도 괜찮다고 한다.  배달음식을 먹고 핸드폰을 보고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집에서 계속 문자가 온다. 알람을 꺼버렸다. 

친구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집은 아닌 것 같아 집과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경찰차가 다가왔다. 낯선 경찰관이 내 이름을 부른다. 겁이 났다. 집에서 가출신고를 했다고 한다. 핸드폰 추적으로 나를 찾았나보다. 사라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참을 슬리퍼 끝자락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빠가 왔다. 경찰은 나에게 다시 집을 나가지 말라고 몇 마디 말을 하고 가버렸다.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빠도 아무 말 없이 나를 태우고 헤이리 마을로 갔다. 

 조용한 카페에서 오랫동안 잔소리와 설교를 번갈아 가며 들어야했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잤다. 학교 선생님이 문자가 왔다. 내일 학교 와서 자퇴서 서류 내야 한다고. 내가 하는 선택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 집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은 확실하다. 


# 3 나의 이야기

 병원에 갔다. 항우울제 약을 받아왔다. 가끔 외로웠지 우울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몸은 우울했나보다. 머리와 몸은 하나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머리가 나를 속이고 살았는지 내가 머리에 속았는지 감정에 솔직했던 내 몸이 아프다. 


#4 그녀(딸) 이야기

 죽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 겁이 난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이런 감정이 왜 올라오는지 모르겠다. 혼자서 병원에 가기는 싫다. 아빠에게 심리치료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얘기했다.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가 불쌍해졌다. 

의사선생님이 항우울제 처방을 해주었다. 아빠랑 의사선생님이 한참 얘기를 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일주일 약을 먹고 심리검사 후 치료가 시작된다고 했다. 왜 내 마음이 아픈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잠이 쏟아진다. 아빠의 표정이 한없이 슬퍼 보인다. 


#5 나의 이야기

 거짓말 같은 평온한 일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살 수는 없다는 자기기만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어떤 형태이든 가족이라는 모습이 잡혀있겠지. 아프면 아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이제 움켜쥔 걸 놔 줘야할 때 인가보다.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렇게 화내고 때리지 말았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목울대에서 더 이상 넘어오지 못한다. 


#6 그녀(딸) 이야기

 계속 잠이 쏟아진다. 이번 주 병원에 가면 무슨 말을 들을까. 내가 정말 아픈걸까. 엄마가 나를 피하는게 불편하다. 다시 말하는 것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피곤하다. 무관심할 땐 마음이 아픈데 관심을 가져주면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엄마한테 사과를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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