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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Oct 27. 2023

열무김치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엄마가 계모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난 우리엄마랑 붕어빵같이 닮았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엄마가 계모일거라는 한심한 생각을 놓지 못한 건 열무김치 때문이다. 


 이전에도 오빠에 대한 물질적 편애로 인해 난 스스로 엄마를 계모로 만들어 놓았다. 더욱이 새언니에 대한 편애는 일종의 배신감까지 들어 내가 설 자리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너무 서럽게 느껴진 날이 있었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다. 친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해 누구하나 살갑게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잘 먹지 못하고 계속 토하기만 할 때 하필이면 열무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시중에 파는 김치는 엄마가 담근 김치만큼 시원한 맛도 심심한 맛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오빠보다 3년 늦게 결혼했지만 아이를 먼저 가져서 솔직히 엄마에게 변변한 축하인사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다 입덧으로 고생하니 열무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결혼할 즈음 친정집은 사기를 당해 풍비박산이었다. 공무원이시던 아빠의 퇴직연금까지 갖다 메꿔도 끝이 보이지 않는 소송에 휘말려 있었다. 사기를 당한 쪽은 우린데 상황이 가해자로 되어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입덧을 한다고 한가하게 열무김치나 담가서 보내줄 상황은 아닌듯했다. 그래도 열무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용기내서 전화를 하면 죽지 않을 만큼 식사하시고 하루 종일 누워 화를 삭히고 계신다고 말에 김치에 ‘김’자로 꺼내지 못하고 그냥 수화기를 내려 놓아야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흘러 뱃속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친정집도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택배가 왔다. 결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시댁에 다녀오기 때문에 따로 시댁에서 택배를 보낼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했다. 시댁이 아닌 친정에서 보낸 김치였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열무김치 보냈는데 잘 받았는지 더운데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엄마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끊으셨다. 웬일인가 했다. 결혼하면서 서러웠던 맘이 깊었던 나는 엄마께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솔직히 살갑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오빠네 식구만 편애하는 모습에서 나는 맘속으로 독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도움 없이 혼자서 잘 살겠다고 나는 자식을 낳으면 엄마처럼 편애하지 않고 애들 마음 잘 다독이며 살 거라고 그렇게 마음속 응어리를 안고 살았다. 


 택배를 열어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참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을 벗겨 통에 김치를 담으면서 연신 콧물을 훌쩍거렸다. 냉장고에 김치를 넣고 코를 풀고 마음을 진정시킨다음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웬 김치예요 어쩐 일로 보내셨어요. 감사하게 잘 먹겠다는 말보다 퉁명함이 먼저 앞서서 미안했다. 엄마는 열무가 너무 연하고 맛있어 보여서 한통 담가 보냈다고 했다. 임신했을 때 먹고 싶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눈앞이 뿌옇게 변해버리고 목이 메어버렸다. 엄마는 알고 있었구나. 내가 먹고 싶었다는 것을. 해주지 못한 마음이 오죽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오해해서 미안하고 마음에 독을 품고 살아서 미안했다. 


 어제 또 택배가 왔다. 시댁에서 보낸 열무가 너무 좋아서 김치 담가 보낸다고. 엄마는 사기를 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3년 전에 청각을 완전히 상실하셨다. 듣지 못하는 고통도 심한데 어지럼증으로 더욱 고생이시다. 그런데도 자식 먹이겠다고 김치를 해서 보내주셨다. 나는 또 화를 냈다. 어지럽고 아프면서 왜 그러시냐고. 속상하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사실 너무 먹고 싶었다는 말 대신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잘 익은 열무김치 고추장에 슥슥 비벼 먹고 나서 엄마한테 문자를 넣었다. 

 (날도 더운데 아빠랑 영계백숙 드시라고 통장에 좀 넣었어요. 돈 아깝다고 그러지 말고 잘 챙겨 드세요. 그리고 김치 너무 고마워요. 친정엄마 없는 사람은 불쌍해서 어떡한데.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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