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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Oct 31. 2023

해미의 장례식

“엄마, 엄마, 빨랑 마트 가야해. 해미 집사야해. 밥도 사야하고”

현관에서 신발을 미처 벗기도 전에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엄마 얘가 해미야. 귀엽지. 내가 젤로 귀여운 애 골라 데리고 왔어. 그러니 빨리 가서 집 사 줘.”


“이크. 웬 쥐새끼를 델고 집에 왔어. 갖다 줘.”


“쥐가 아니라 햄스터야. 햄. 스. 터. 엄만 그것도 몰라”


 방과 후 수업을 보내놨더니 매주 이상한 생명체를 하나씩 델고 들어온다. 

도마뱀, 장수풍뎅이, 거북이, 이번에는 햄스터까지. 내 눈엔 쥐새끼인데. 생명과학수업이 생명을 존중하기 위한 수업이라기보다는 애완동물 육성프로그램 같아 늘 불편했는데 이번 주는 끝판을 보는 것 같아 속이 뒤틀린다. 


 아이에 성화에 일단 도망가지 못하게 집에 있는 리빙박스 안에 감금시켜놓고, 마트에 가서 쳇바퀴와 먹이 그리고 톱밥을 샀다. 햄스터를 박스에서 집으로 옮겨야하는데 아직은 이 생명체를 만질 용기가 나지 않아 아이에게 미뤘다. 너가 가져온 생명이니 너가 책임져.


 아이는 자기새끼인양 애지중지다. 나에겐 좀처럼 건네지 않는 다정함으로 밥도 챙겨주고 학교 갔다 온다는 인사까지 해준다. 이런 쥐새끼한테도 내가 밀리다니. 용돈도 모아 맛있는 해바라기씨도 산다. 어버이날 받은 선물은 종이카네이션이 다인데 길러준 나보다 햄스터가 더 대접받고 있다. 속상하다.


 한참을 잘 지내다가 아이는 시들해졌는지 해미 집 청소도 내가 하고 먹이도 내가 주고 해미한테 인사도 내가 한다. 

그러다 해미도 자기 집이 좁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가출해 버리는 사고를 친다. 

잘 돌봐주지도 않던 아이가 해미가 없어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이사 후 생전 옮겨보지 않던 쇼파며, 장롱이며 냉장고가 갑자기 움직인다. 

이삿짐을 새로 부린 것처럼 집안이 난리가 났는데 해미는 코빼기도 안비치고 포기해야 할 쯤 회색 털뭉치가 쪼르르 거실 끄트머리를 달려간다. 

 내가 다시 햄스터를 키우면 성을 간다. 다시는 이런 거 가져 오지 마. 다음 학기엔 생명과학 수업 듣지 마. 진이 빠지고 나서 아이한테 한말은 이쁜 말이 아니였다.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고 어디 가서 굶어죽지 않고 이렇게  돌아와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미가 오고 나서 남편의 새로운 주사가 생겼다. 

전에는 술 마시고 오면 얌전히 양말 벗고 발 씻고 옷 갈아입고 잤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은방에서 자꾸 말소리가 새어나온다. 

“너도 하루 종일 여기 있으니 외롭지. 나도 그래. 우리 애들이 이제 놀아주지도 않고...... ”

“......”

“너도 한번 피아노 쳐볼래.” 


 다음날 남편이 몰래 나의 귀에 비밀을 털어놓는다.

“나 어제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해미가 갑갑할 것 같아서 피아노위에 올려놓고 같이 노는데, 얘가 갑자기 뚝 떨어진거야. 숨도 안 쉬고 가만히 있어서 죽었구나 생각했어. 아마 내가 떨어뜨려서 해미가 죽은 줄 알면 아주 난리칠 것 같아서, 내가 인공 맛사지 해 줬더니 살아났어. 잘했지.”

“......”


 이렇게 해미랑 2년을 보내 무더운 여름. 해미는 더 이상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며칠 전부터 먹는게 신통치 않아 새로운 견과류도 사왔는데 결국 얼마 먹지도 못하고 가버렸다. 

아이의 손위에 한껏 웅크리고 얕은 숨을 내쉬면서 잠들 듯 그렇게 떠났다. 

아이는 눈두덩이가 벌겋게 붇도록 울었다. 더위 먹을까 걱정 되서 그만 울라고 다그쳐도 계속 울었다. 

이런 이별이 싫다.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 끝에 남겨진 감정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예쁜 종이상자를 찾아서 하얀 면수건을 깔았다. 해미는 우리 곁에 와서 잠시 위로가 되어주었다. 보내주는 것도 잘 보내주고 싶었다. 


모종삽과 작은 종이 관을 들고 아파트 구석진 화단으로 갔다. 

구덩이를 팠다. 아이가 정성스레 종이 관을 내려놓고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넨다.  

뭔가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하나 더 생겨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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