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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Oct 27. 2023

엄만 왜 아빠랑 결혼했어?

엄만 왜 아빠랑 결혼했어?


딸아이가 당돌한 질문을 했다. 

엄마는 왜 생각 없이 결혼했냐고. 아빠가 뭐가 좋아서 결혼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객관적으로 아빠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할머니 집이 부자도 아니고 도대체 왜 아빠랑 결혼했냐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넌지시 딸아이에게 말한다. 

“너 크면 나랑 똑같이 돼.”

“뭐야. 그럼 난 망했네.”

“딸 너가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너 내 남자 디스하지마. 나 니 아빠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거든.”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반사적으로 거짓말로 맞받아쳤다. 

아이의 표정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나도 궁금해졌다. 왜 이남자랑 결혼했을까?

결혼은 인륜지대사인데 그만큼 고민하고 고민해서 한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시절 결혼해야할 타이밍에 이 사람을 만나서 한 것일까?

이십년을 같이 한 이불 덮고 사는 사이인데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이남자랑 결혼했을까?


조건으로 따지면 내가 어린 시절 만나봤던 사람들 중에 딱히 좋은 조건도 아니고, 첫사랑은 더더욱 아니다. 

결혼해서 가슴 뛰게 좋고 행복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몇 번의 이혼위기가 있었고 한번은 서류에 도장까지 찍은 적이 있었다. 물론 법원까지 가지 않고 수습되었지만.

그럼 왜 결혼해서 아직도 살까?

딸아이 말대로 아무 생각 없이 결혼을 막한 것 일까?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냈던 의문이 딸아이의 당돌한 질문을 받은 후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첫 만남은 스물다섯, 스물일곱.

난 취준생이고 그 역시 대학원을 걸쳐놓은 취준생이였다. 미래는 암담했고 가진 것은 더더욱 없는 상태였다. 그때 친구의 소개로 만나서 오년을 사귀고 결국 헤어지지 못해 결혼했다. 

오년이란 시간동안 뜨거운 사랑과 몇 번의 헤어짐의 반복이었다. 그사이 우린취업을 했고 오랜 시간동안 떨어져 지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애끓게 아름다운 건 그들의 사랑에 방해꾼들이 많아서였다.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더 불붙었을 것이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

나 역시 집안의 반대로 그와 사귄 시간들이 쉽지 않았다. 우리의 연애에 장애가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끔 장모님이 그렇게 반대만 안했어도 우린 결혼하지 않았을 수 도 있다는 말에, 엄마가 괜스레 원망스러워진다. 


오기로 한 결혼인지 진짜 사랑해서 한 결혼인지 잘 모르겠다. 결혼이란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렇게 애틋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시들하고 남루한 현실만이 남겨졌을 때 비참함이란......

왜 그렇게 힘들게 결혼했는지 이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지 딸아이의 질문이 다시금 비수가 되어 꽂힌다. 


처음 그에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은 뜨거운 열정이었다면 지금은 측은지심이다. 너무나 많은 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를 보면 애잖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의 결혼을 지탱해 주는 커다란 감정의 주체는 그에 대한 연민인가보다. 딱히 모성애가 넘쳐흐르는 것도 아닌데 아이보다 그가 더 애처롭고 딱해 보일 때가 많다. 그만 바라보는 시댁이 커다란 짐 같이 느껴질 때, 같이 나눠 짊어질 사람이 없어 외로워 보일 때. 내가 곁에 없다면 저 사람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아직도 나를 여기에 붙들어 놓고 있는 게 아닐까.


마냥 어려움과 가여운 마음만으로 결혼이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해 가끔씩 생기는, 가슴 뛰는 마음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 역시 같이 살아온 세월만큼 차곡차곡 내 마음의 곳간에 쌓여있다. 


지금 그와 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우 같은 존재다. 결혼제도 안에서 서로 겪어야했던 온갖 일들을 헤쳐 나가면서 끈끈한 전우애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 남편이 형제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갱년기로 인한 호르몬 탓만은 아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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