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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Nov 30. 2023

사과집 풍경

“진아 잘 지내고 있냐? 오늘 우리 옛날에 살던 사과집 갔다 왔는데 이제 그 집 없어졌더라”

“왜?”

“주인이 바뀌었는지 옛날 살던 집 부수고 건물 올렸더라구. 이젠 더 이상 사과집이 없어.”

소원하게 지내던 친정오빠가 술을 한잔 마셨는지 멜랑꼴리 해져서  40년 전에 살았던 집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사과집은 내가 집에 대한 명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장소이다. 

집주인 할머니가 중앙시장에서 대구청과라는 큰 가게를 갖고 있어 우리는 그냥 그 집을 사과집이라고 불렀다. 

서울 홍제동 인왕산 밑에 살다가 강릉으로 갑자기 전근을 오게 되었는데 연고도 없고 친척도 없는 낯선 이곳에서 집을 구하는 건 서울살이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봉에 모아놓은 전셋돈도 별로 없는데다 아이는 줄줄이 셋씩이나 딸려있는 우리를 반겨줄 곳은 없었다. 


그래도 수완 좋은 엄마가 어떻게 하다가 사과집 행랑채를 전셋집으로 얻어 그곳에서 4년을 살았다. 방 두 칸에 부엌살림 겨우 넣을 공간하나 있고 연탄아궁이가 있는 곳이었다. 

미닫이문으로 분리되어있는 방은 문을 열어놓으면  한 칸짜리 방이 되어버린다. 살림살이라고 해봤자 서랍장농이랑 책상하나 그리고 흑백텔레비젼이 다였다. 지금이야 미니멀리즘으로 살림살이를 간소화 하고 살지만 그땐 정말 없어서 그렇게 산 것 같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이사를 와서 유치원도 다니지 못하고,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했다. 내 이름 석 자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나를 주위에서 걱정했는데, 엄마가 어떻게 나를 공부시켰는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받아쓰기를 완벽하게 백점 받아오게 만들었다. 


사과집에 살던 기억은 따스한 느낌으로 채워져있다. 풍족했던 시절도 아니고 늘 쪼들리고 부족한 살림살이였는데 희한하게 그 시절기억은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부엌에 수돗물이 나오는 집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집밖에 수돗가에서 설거지며 빨래를 해야 했던 엄마는 한겨울 찬바람에 얼굴이 얽어져버렸다. 가림막하나 없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궁색한 살림살이를 꾸려가야 했던 젊은 시절의 엄마는 그렇게 눈물을 삼키며 살아나가고 있었다. 


김장철이면 배추가 삼백포기씩 좁은 마당에 쌓여있고 집주인 할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엄마를 불러 김장을 시키곤 했다. 철이 없는 나는 그 많은 배추가 우리집거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많은 배추를 가진 우리 집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며칠에 걸쳐 김장이 끝나면 긴긴 겨울이 찾아왔다. 

아랫목에 담요를 깔고 누워 삼성당 세계 어린이 문학전집을 펼쳐놓고 그림구경을 했다. 팔랑 귀였던 아빠가 누구의 꾐에 넘어갔는지 어느 날 문학전집을 한질 들여놨다. 차라리 그림책을 사오시지 글자가 너무 많은 이 책을 읽기보다는 그냥 사이사이 끼여 있는 삽화를 보며 내용을 상상하다가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림 중에 해저 이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거 보면 아주 형편없이 보냈던 시간들은 아닌 것 같다.


사과집의 여름은 포도가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주인집 앞마당에 포도넝쿨이 올라가 한여름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고 포도가 익으면 우리 집에 두어 송이 갖다 주기도 했다. 주말 아침이면 은하철도 999를 보러 아침을 먹자마자 삼남매가 주인집 마루에 걸터앉아 목을 빼고 기다렸다. 집주인 할머니 기분이 좋으면 티비가 금방 켜졌지만 전날 집안에 시끄러운 일들이 있으면 그냥 우리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번은 집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정말로 내쫓으려고 한 적이 있다. 아빠의 생일을 맞이해서 엄마가 약밥을 짓다가 곤로가 넘어졌는지 그만 불이나 버렸다. 누군가 이불을 가져와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옷가지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은 엄마는 화상보다 집주인 할머니가 던진 모진 말에 더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아보였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엄마가 병수발을 들었다. 전셋집에서 벗어나 연립주택을 청약했던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했기에 주인할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소문난 바람둥이였던 주인집 할아버지는 할머니 속을 무던히 썩이더니 말년이 좋지 않았다. 성실하고 싹싹했던 엄마는 주인집안일들을 돌보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연립주택에 새로운 가구들이 채워졌다. 꿈에 그리던 싱크대가 부엌에 있어 사시사철 뜨거운 물을 쓸 수 있고 네 식구 앉아 밥을 먹을 식탁이 생겼다. 수세식 화장실에 욕조가 있고 세탁기가 들어왔다. 방은 두 개였지만 엄연히 문이 달린 각각의 방이었다. 거실에는 쇼파가 있고 베란다에는 화초를 키웠다. 엄마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작년에 우연히 연립주택 근처에 볼 일이 생겨 가게 되었다. 낡고 초라한 이 아파트가 40년 전 엄마의 꿈에 궁전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그 시절 사과집에서 벗어나 세상 다 얻은 듯 행복에 겨워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고 어린 엄마가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행복이었던 순간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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