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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Nov 30. 2023

빛바랜 사진속 기억

인왕산 달동네 풍경

나의 아빠는 산림청 공무원이셨다. 8남매 맏이였던 아빠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고향 근처에 근무지를 포기하고 강원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다. 고모들의 뒷담화에 따르면 아마도 엄마가 사는 곳에 아빠가 그냥 주저앉았다고 엄마를 여우같은 년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 거침없이 엄마를 욕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빠는 군대를 가기 전에 엄마랑 결혼했다고 한다. 속도위반이었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나는 부모님께 그 사연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군대기간 내내 엄마는 하동에서 낳은 오빠와 할머니 자식들을 함께 키우면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젖이 나오지 않아 오빠는 밥물을 먹여서 키웠다고 한다. 어릴 적 많이 야윈 오빠의 사진을 보면 제대로 먹지 못해 저렇게 크지 못했나 싶다. 


제대하고 아빠는 평창으로 근무지가 배정되었다. 평창에는 다행히 관사가 있어서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빠랑 같이 올라왔다고 한다. 가난하고 매정한 할머니는 분가를 할 때도 숟가락 하나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젊은 시어머니와 그의 자식들은 홀연히 떠나는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쨌든 평창에서 사는 동안 엄마는 행복했다고 했다. 나와 동생을 관사에서 낳고 기르면서 틈틈이 직원들 밥도 해주고 살림도 늘리면서 진짜 신혼 같았다고. 오디가 한창 무르익을 때면 엄마는 학교 가는 오빠에게 양은 주전자를 손에 쥐어주었다. 학교가 파하면 오빠의 하얀 러닝과 입술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관사에서 학교로 가는 길목에 심어진 뽕나무 열매는 오빠 키만큼 사라져있었다. 


행복은 늘 불행과 샴쌍둥이 같다. 엄마의 행복도 길지 않았다. 아빠가 본청으로 발령이 나서 서울로 올라와야했다. 박봉에 시시때때로 시댁에서는 돈을 보내라고 졸라대고 아이들은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하기 시작하는 시절, 서울에서 다섯 식구가 거쳐할 곳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평창에서 큰 목장을 하시던 분이 당신들 유학하는 자녀들을 보살펴주는 조건으로 홍제동 달동네에 방 한 칸을 내 주셨다. 엄마의 또 다른 생계형 보모역할의 시작이었다. 주인집 아이들 넷과 우리 집 남매 셋. 아빠는 청량리에 있는 본청에 출근하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러 가야했고 집안일은 엄마 혼자 다 처리해야했다. 그 시절 사진 속 젊은 엄마는 참 용감했던 것 같다. 


평창에서 시골소년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서울로 전학 온 오빠는 학교생활을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시골과 달리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고 세심하게 신경써주는 어른은 없었다. 오빠는 이시기부터 일찌감치 공부랑 작별을 한 것 같다. 얼마 전 구글맵에서 우리가 살던 달동네에서 인왕초등학교까지 거리를 재보았다. 어린 오빠가 책가방 메고 이렇게 먼 거리를 매일 어떻게 다녔을까.


옛날 빛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기억을 유추해내려고 하지만 솔직히 그때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가 해주던 이야기들을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맞춰가면서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달동네에서 수돗물이 나오는 것은 언감생심이라 아랫동네에 항상 물을 길어 와야 했고 화장실은 마을 공동화장실을 써야했다. 겨울이면 길이 미끄러워 연탄재가 항상 뿌려져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다. 추석 무렵이었는지 주인집 언니, 오빠들과 인왕산 근처 계곡으로 놀러가 사진을 찍었다. 추석빔을 곱게 차려입은 주인집 언니의 한복이 부러웠었는지, 추석빔을 얻어 입지 못해 입이 한 닷 발 나와 있는 나의 모습이 참 안쓰럽게 보인다. 철철이 옷을 사 입힐 수 없던 형편에 주인집 언니 옷이 작아져야 내 차례가 왔기에 사진 속 색동저고리는 가질 수 없는 환상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텔레비전에서 해외입양아 사연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하마터면 노란머리에 파란 눈의 양부모에게 보내져 생이별 했을 수 도 있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내가 다섯 살 때 초여름시기였나 보다.  엄마는 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막 시장을 나가려고 할 때 내가 까무룩 잠이 들어버려 깨우기도 그렇고 해서, 금방 갔다 올 거라는 생각에 깨우지 않고 그냥 자게 놔두고 인왕시장으로 갔다. 한참 후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내가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 놀란 엄마는 이웃사람들과 함께 서 너 시간 동안 나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골목골목 산비탈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에서 다섯 살 꼬마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눈물범벅이던 엄마에게 누군가가 내가 천주교회 계단에서 울고 있는 걸 봤다고 알려주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확인하고는 엄마는 기절해버렸다고 한다. 설 풋 선잠이 들었던 나는 깨어나자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 혼자 가 본적 없는 시장을 향해 무작정 내려가다가 길을 잃고 천주교 앞에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그때 엄마를 못 만났으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엄마의 인생도 달라졌겠지. 그때이후로 나는 혼자 집에 있으면 잘 나가지 않는다. 또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까봐.

빛바랜 사진 속 홍제동 달동네 집은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 고급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원래부터 사진 속 기억에만 갇혀있던 곳이라 크게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아있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뭔가 잃어버린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린 시절 짧게 스쳐지나간 그곳. 


인왕산 홍제동 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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