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느끼는 공평함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날 태어나게 해줘.”라는 요구를 하며 태어나지 않는다.
그냥 태어나 있다. 그리고 살아간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게 완벽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어떤 이유에서 나온 질문이든 간에 존재의 근원을 향한 호기심만큼은 피할 수 없다.
원하는 대로 산다는 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전제다.
그런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마음 아프지만, 그건 의지대로 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태어나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 인생만큼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야 공평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공평하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기에,
살아가는 길만큼은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우리가 수없이 내리는 선택들이 삶을 만들어가는 동안,
그 사이엔 늘 작은 ‘텀’이 존재한다.
그 텀 안에서 우리는 수정하고, 고민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기회를 얻는다.
약간의 행운과, 나 자신,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말이다.
조금 더 편한 길은 있을지 몰라도,
그 길이 모두에게 같은 만족과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행복의 크기는 결국 각자가 가진 경험치와 기준에 따라 다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각각 공연 티켓을 준다고 치면 같은 기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의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고 만들어간다.
행복은 정해진 양이 아니라,
무한히 발견되고 확장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한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모두에게 주어진 진짜 공평함이 아닐까.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그만큼 무한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시작점이 다르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의 수나 그 사이의 텀까지 같을 필요는 없다.
불평할 틈은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강제로 주어지지 않은 그 틈을,
굳이 낭비하지 말자. 시간낭비일 뿐이니까.
그저 그 차이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고유한 행복을 만들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