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일생일대의 싸움, 그리고 깨어진 기대

by ElenaLee


여행 끝, 현실 시작: 빨래더미 위에서 터져버린 분노



부부간의 대부분의 싸움이 그러하듯이, 그날 우리의 싸움도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거의 2주 동안 이어졌던 한국과 뉴욕, 그리고 가족들과의 멕시코 여행을 마치고 캄페체의 집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낯선 곳을 오갔던 여정은 즐거움도 컸지만, 솔직히 피곤함이 온몸에 덕지덕지 쌓여 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나를 좀 편안하게 해 주리라는, 아니, 최소한 집안일에 당분간 신경 쓰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 나를 맞아주리라는 어설픈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내가 그 이 주 동안 신나게 여행만 하고 돌아온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역시나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마주한 현실은 거실 한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빨랫감과, 7일 치 정도 되는, 부랴부랴 빨아 널은듯한, 빨랫줄에 빈 공간 없이 빼곡하게 널어놓은 빨래들이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이때까지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불만 – 마치 이 집에서 나 혼자만 노예처럼 끝없이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 같다는 억울함 – 이 한꺼번에 폭발해 버렸다. 아마 멕시코에 사는 동안 그렇게까지 심하게 싸운 적은 없었다 싶을 정도로, 우리는 그야말로 박 터지게 싸웠다.



"너 혼자 가!" 차가운 한마디, 그리고 500만 원짜리 비행기 표



남편은 나름대로 내가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것이며, 그렇게 세탁물이 쌓인 것은 내가 돌아오기 직전 갑자기 회사 일이 바빴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던 나에게 그의 말들은 이성적인 해명이 아니라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변명으로만 들렸다.

나는 더 이상 이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생각, 이제 정말 이혼을 해야겠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랐고, 당장 비행기 표를 끊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내 선언에 대한 남편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는 여기서 사람을 쓰든지 해서 애들 교육시키면 되니까, 당신 혼자 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오기가 생겼다. 그래, 가주겠다. 다음 날, 나는 정말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으려고 여러 여행사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편도 비행기 표 가격은 거의 500만 원에 육박하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그 엄청난 액수와 함께, ‘아이들은 어쩌지?’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그제야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뒷일은 생각도 않고 감정적으로 일을 밀어붙이고 있었다는 아찔한 자각이 들었다.



내일이 아이 생일인데… 어색한 휴전, 끝나지 않은 원망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진짜로 나랑 이혼하고 싶은가 보네. 붙잡지도 않는 거 보니." 그러고는 마침 다음 날이 아이의 생일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내일이 애 생일인데, 부모가 이혼한다고 말하는 게 아이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은 해봤어?" 하는, 지금 생각하면 구차하기 짝이 없는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변명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다음 날이 아이의 생일이었기에 그 말은 묘한 설득력을 가졌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네가 더 잘못했지!" 하는 식의 유치하고 쓰잘머리 없는 남 탓하기를 한참 더 연발하다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그 격렬했던 싸움의 열기도 조금씩 휘발되어 버렸다.

나중에 남편은 그때 "너 혼자 가"라고 했던 자신의 말에 대해, 내가 계속 힘들어하니 차라리 한국에 보내주는 것이 나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의 진의를 다 믿지는 않지만 말이다.)



나만 힘들었던 걸까: 뒤늦은 깨달음의 무게



하지만 이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오직 나 자신의 감정과 힘듦에만 너무 깊이 몰입해 있었다는 것을.

남편도 그 나름대로 계속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