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 나는 아이들과 잠시 한국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회포를 풀고, 그리웠던 음식들을 실컷 먹고, 아이들 내복이며 이런저런 식료품과 생필품들을 캐리어 가득 사서 다시 캄페체로 돌아올 때까지도, 우리 부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한국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무언가 달라지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다시 멕시코 땅을 밟으니 마음 한구석이 더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나조차도 확신이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한국의 가족들에게 차마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다 돌아왔고, 우리 부모님은 예정대로 2월에 우리를 보러 멕시코를 방문하시겠다는 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셨다. 부모님은 이미 내가 멕시코에 살러 들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매달 얼마씩 돈을 모으며 이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다.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짐들을 풀고, 다시 캄페체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티아 니디아 댁에 자주 초대받아 맛있는 음식도 얻어먹고, 수많은 피냐타 터뜨리기 구경도 하며 밤늦도록 현지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스페인어를 아주 못하는 나였지만, 니디아 아주머니 댁에만 가면 갑자기 귀가 트이는지 웬만한 이야기들은 다 알아듣고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까지 하는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여행 전까지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금세 시간은 흘러 2월이 되었고, 드디어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그녀의 두 아이가 대한항공(연결 편은 델타항공)을 타고 칸쿤에 도착할 날짜가 되었다. 나와 작은아이는 가족들을 마중하러 ADO 버스를 타고 칸쿤으로 향했다.
칸쿤 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꽤 큰돈을 지불한 뒤에야 렌터카 회사에 도착해 미리 예약해 둔 8인승 카니발을 빌릴 수 있었다. 비행기 도착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칸쿤 시내에 잡아둔 호텔에 잠시 들러 숨을 돌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뉴욕에서 델타항공 비행기가 연착되어 언제 칸쿤에 도착할지 기약이 없으니 계속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예정했던 오후 6시를 훌쩍 넘겨 다음 날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온 가족이 칸쿤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얼굴은 반가움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와락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고생하며 사는 딸이 안쓰럽다며 연신 내 등을 토닥이셨다. ‘엄마, 사실 나도 내가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도, 입으로는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공항에서 일행을 모두 태우고 호텔에 도착해 짧은 밤을 보낸 뒤, 다음 날부터는 내가 짜놓은 여행 계획에 따라 유카탄 반도 전체를 돌아보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칸쿤을 시작으로 고대 마야 유적지인 치첸이트사(Chichén Itzá)와 신비로운 세노테(Cenote)를 거쳐, 아름다운 식민지 도시 메리다(Mérida)와 우리가 사는 캄페체(Campeche), 그리고 일곱 빛깔 호수 바깔라르(Bacalar)까지 둘러본 후 다시 칸쿤으로 돌아오는, 빡빡하지만 알찬 여정이었다.
부모님도 멕시코에 대한 처음의 인식은 다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 비슷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셨다. 특히 어린아이처럼 세노테의 신비로운 푸른 물빛에 감탄하고, 바깔라르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며 행복해하셨다. 엄마는 칸쿤 바다의 터키석 같은 물색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연신 감탄하셨고, 여동생은 바깔라르 호수의 평화로운 풍경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아빠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너무나 많은 멕시코의 다양한 매력에 놀라워하셨다. 그런 부모님께서 "멕시코가 얼마나 예쁘고 좋은지, 어쩌면 미국보다 더 나은 것 같다"며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해 극호감을 표현하시는 것을 보니 나 역시 뿌듯했다.
열흘 정도의 멕시코 여행을 마친 우리는 다 함께 뉴욕으로 향했다. 칸쿤으로 들어오는 비행기가 뉴욕을 경유했었고, 마침 아버지가 예전부터 뉴욕을 한번 가보고 싶어 하셨기에 겸사겸사 여행 일정에 포함시킨 것이었다. 뉴욕에서도 6일 정도 머무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와 작은아이는 다시 칸쿤을 거쳐 캄페체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 그리고 오랜만에 마주한 남편. 반가움과 애틋함이 넘쳐야 할 그 순간,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싸늘한 냉기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남편과 내 일생일대의 싸움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