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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마나산타와 혼란스러운 왓츠앱

도대체 세마나 산타, 왓츠앱 이 뭐냐고?

by ElenaLee


학교 가는 길, 현실의 벽을 마주하다



우리는 3월 말에 캄페체에 도착했고, 나는 아이들을 4월에는 바로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남편이 한 달 전에 도착해 집을 구하면서 미리 학교를 몇 군데 알아보아 다닐 학교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그저 한국에서처럼 서류만 잘 제출하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당연하게도 한국이 아니었고, 나의 낙관적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렇게 순탄하게 풀릴 리가 없었다.


다행히 남편 회사에는 알렉스라는 현지인 직원이 있었다. 그는 우리의 영어 통역은 물론, 낯선 멕시코에서의 정착에 필요한 온갖 행정 처리와 문제 해결을 돕는 해결사 같은 존재였다. 처음 만난 알렉스는 키가 작고 안경을 썼지만, 다부지고 똘똘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 영어가 유창했고, 무엇보다 일을 꼼꼼하고 야무지게 처리하는 스타일이라 금세 의지가 되었다.


스페인어 한마디 못하는 나에게 알렉스는 가정 문제부터 아이들 학교 문제까지,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현지의 정보를 알려주는 없어서는 안 될 메신저였다.


알렉스와 남편과 함께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다닐 학교를 다시 방문해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학교 분위기를 살피는 등 분주한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큰아이가 다닐 예정이었던 프리마리아(초등학교)에서는 서류를 제출했지만, 학교에 빈자리가 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심지어 5월이 되어서도 가능할지조차 기약이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반면 작은아이는 킨데르(유치원)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세마나 산타와 얼떨결에 시작된 킨데르 생활



그런데 학교 측에서 뜻밖의 질문을 해왔다. 4월에는 ‘세마나 산타(Semana Santa)’라 불리는, 부활절을 기념하는 긴 연휴 기간이 있어 거의 2주 정도 방학을 하는데, 그래도 4월에 입학시키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세마나 산타가 뭔지도 몰랐지만, 학교는 월 단위로 학비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입학하자마자 2주를 쉬고 실질적으로는 일주일 정도만 다니게 될 우리를 배려해 물어봐 준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조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학비가 얼마든, 며칠을 다니든 일단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상관없어요!"를 외쳤고, 교복도 미처 맞추지 못한 작은아이를 캄페체 도착 3주 만에 킨데르(유치원)에 밀어 넣듯 입학시켰다.



왓츠앱 정글 속, 스페인어 까막눈의 고군분투



물론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나는 작은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직접적인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선생님은 나를 돕기 위해 왓츠앱(WhatsApp)에 있는 유치원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나는 그곳에 변변한 첫인사 한번 남기지 못하고 유령처럼 숨어 지냈다. 극도의 내향적인 성격(‘극 I’)에 스페인어 까막눈이었으니, 그 활발한 엄마들의 대화는 나에게 거대한 벽과 같았다.


수시로 울리는 메시지들을 일일이 복사해 구글번역기에 돌리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들은 어찌나 할 말도 많던지, 대부분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정보가 아닌 일상적인 수다였지만, 혹시라도 중요한 숙제나 공지를 놓칠까 봐 채팅방을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연속이었다.



어린이날 파티 초대, 내향형 엄마의 끝나지 않는 고민



그러던 어느 날, 단체 채팅방에 사진 한 장과 함께 공지가 올라왔다. 곧 있을 ‘어린이날’을 기념해 파티를 열 예정이니, 지정된 장소와 시간을 확인하고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종류의 소셜 이벤트를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었다. 일대일 만남은 그나마 괜찮지만, 네 명 이상 모이는 자리는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심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힘겨운 일이었다.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는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가야지’ 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말도 안 통하는데 가서 뭘 한담. 분명 구석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있다 올 거야’ 하며 포기했다. 또 그다음 날이면 ‘아니야, 이건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잖아. 엄마가 노력해야 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충고를 건넸다. "당신이 알아서 해." 역시, 남편은 남편이었다.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참석 여부를 알려줘야 할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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