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한 위로의 말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정영욱작가가 삶을 통해 얻은 사유와 통찰의 문장들이 잔잔히 마음에 남는다. 나의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을 일부 나누려 한다. 그 문장들이 어쩌면 당신의 마음에도 가닿을 것이다.
삶은 알면 알수록 힘에 부치지만, 모르던 때로 되돌아갈 수 없는 구조니까. 살아간다는 것은 좀처럼 고치기 힘든 감기를 달고 사는 것이니까.
정말 그렇다. 살아간다는 건 감기를 달고 산다는 것. 오래 앓았던 감기를 떼고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더라도 언젠가는 또 감기에 걸린다. 환절기, 한겨울, 그리고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속담이 있건만 오뉴월에도 감기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렇게 삶은 모두가 따듯한 절기를 보내는 때라도 누군가에게 으슬으슬 떠는 추위를 안겨주기도 하는 것.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리 긴 감기라도 감기는 감기일 뿐,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당신을 일으키는 문장이 어딘가에 있다.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였나. "늦기 전에 들어와야 해." 동네 뒷산에서 딴 버섯으로 버섯볶음을, 중앙시장에서 산 어묵으론 어묵국을 준비하는 할머니가 자주 했던 말이다. 너무 늦기 전에 돌아오라고. 해 지기 전엔 저녁 먹으러 오라고. 자주 떠올리진 못하겠다만, 난 그때의 다정함을 기억하며 기약한다. 또 살고 있다. 그녀의 말마따나 출처 없는 외로움이 몰려올 땐 나도 들어갈 곳이 있었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라는 안식으로의 도약을 하려고 애쓴다. 종잡을 수 없는 괴로움이 내 삶을 꺾어 놓는다면, 잊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들어가야 할 곳이 있고 누군가에게로 돌아가야 할 약속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155쪽-
손자가 밥이라도 굶을까 걱정인 할머니는 늦지 않게 밥을 먹이고 싶다. 일찍 오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늦기 전에 와서 밥을 먹으라는 할머니의 말은 곧 따뜻한 밥 한 끼다. 밥을 거르지 않는 것은 삶을 건너뛰지 않을 소망이다. 밥은 생명의 연장이고 삶의 지속이니까. 나를 위해 밥을 짓던 또는 짓는 이가 있다는 것. 그게 아니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던 또는 짓는 이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돌아갈 곳이고 약속이다. 그 약속은 곧 신뢰고 응원이고 사랑이다. 괴로움 가운데서 꺾이지 않을 마음이다.
우리라는 도형
각을 가진 도형은 모서리로 이름을 짓습니다. 이각형은 없죠. 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서리가 적어도 세 개 이상이어야 도형이 됩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아, 이러면 끝이 없으니 우리 더 많은 모서리는 '다각형'이라 합시다.
당신과 나는 이제 도형이 될까 합니다. 이각형은 없죠. 그러니까 너와 나만으론 도형이 되기 어렵습니다. 해서 뾰족한 모서리를 하나 추가합시다.
만남이라는 모서리. 더해서 약속이라는 모서리. 이해라는 모서리. 모서리가 늘어날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이윽고 너와 나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하나의 공간이 생기어 도형이 되었습니다. 모서리가 늘어날수록 각이 점점 넓어져 뾰족함이 유해지기도 합니다.(중략)
그 공간과 꼭짓점을 전부 더해 '우리'라 이름 지어 봅시다. -176~177쪽-
우리 각자는 삶의 궤적에서 점(.) 하나로 시작한다. 아주 작은 점 하나인 내가 또 하나의 작은 점 하나인 너를 만나 선을 만든다. 두 점이 마음 조각 하나를 꺼내어 나누면 또 하나의 점이 생기고 그 세 점을 연결하면 모서리, 곧 각이 생긴다. 두 존재가 만들어낸 뾰족한 모서리는 도드라져 보이고 거슬릴 수 있다. 거슬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면 둘의 관계는 딱 거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드디어 면이 생긴 획기적인 변화에 주목해 보자. 약속, 이해, 책임, 고통, 치욕 등 많은 것들을 공유할수록 둘 사이의 모서리는 더욱 많아진다. 모서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각이 점점 넓어져 모서리의 각이 점점 완만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의 점이었던 너와 나 사이에 넓은 공간이 생겨난다. 둘의 마음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그건 바로 둘 사이에 공유함이 많다는 것이고 함께한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적응과 소통의 시간을 통해 이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같은 온도라도
누군가는 따뜻해지고
누군가는 쌀쌀해집니다
4월의 기온과 10월의 기온 둘 다 수치상으론 다를 거 없는 온도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4월은 따뜻해졌다는 반응이고, 10월은 쌀쌀해졌다는 반응이지요. 어쩌면 온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 절대적인 수치보단 상대적인 감각에 영향을 받나 봅니다. (중략)
서로의 계절에 따라 지금의 말과 관계는 포근해지거나, 서운해지거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나도 모르게 미움받는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상대의 이전 상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고, 나의 이전 상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겠지요.(중략)
늘 그랬듯 계절은 돌고 돌겠지요.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응원이 되었겠지요. 누군가에게는 헤어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만남이었습니다. -271~273쪽-
며칠 전 한국에 사는 언니를 보러 온 필리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한국 날씨 어때요?"라고 묻자 그녀는 "너무 추워요."라고 대답했다. 오늘 낮 최고기온이 22도에 맑은 날이라 이 정도면 좋다고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한국인에게 이런 날씨는 완벽한 날인데 말이다. 1년 내내 낮기온이 30도가 넘는 필리핀 사람에게 한국의 겨울은 못 견디게 추운 날씨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5월에도 춥다면 이곳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처럼 같은 절기면서도 다른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의 선의는 누군가에게 굴욕감을 줄 수도 있고 나의 무관심이 도리어 누군가에게 편한 마음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나 말고 다른 누군가에 대해 무지하므로 그들을 위한 최선을 알지 못한다. 이웃과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배우자, 부모,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편하게 받아들이자. 모두에게 완벽한 날씨가 없듯이 모두에게 완벽한 나도 없다.
정영욱에세이를 읽으며 '완벽한 나'가 아닌 '그저 나'의 마음을 읽고 다독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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