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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집이 보이네

또 하루가 저문다, 오늘도 맑음

by 조은영 GoodSpirit

새완이 농경로를 한참 걷고 있을 때, 호스트에게 전화가 왔다.

"은영씨, 어디세요?"

"여기저기 걷고 있어요."

"저녁 드셨어요?"

"아니요."

"그럼 어서 오세요. 회를 사 왔는데 친구가 김치전도 부쳤어요. 같이 먹어요."

"아, 친구분이랑 오랜만에 만나셨을 테니 두 분이서 회포를 푸셔야죠. 저는 더 걷다가 저녁 먹고 갈게요."

"아니에요. 자주 보는 친구예요."

"그럼 <평균이하 카페>에서 푸딩 사갈까요? 친구분이 그거 좋아하신다고 했잖아요."

"괜찮아요. 음식이 많으니 그냥 오세요."

"초면인데 빈손으로 가기 민망한데."

"그냥 오셔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빈 손으로 오세요."

집으로 가는 길

빈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 집으로 가는 길. 밭담과 도로 울타리 사이의 보행자로를 걷는다. 구름덩어리가 주홍빛으로 채색되어 낮게 드리워져 있다. 제주에서 3일째 오늘도 맑음이다. 호스트는 말했다.

"은영씨가 가진 기운이 있어요. 태풍 예보로 제주평강 옆방 투숙색들이 연달아 예약취소를 했는데 갑자기 서울 친구한테 보자고 연락이 온 게. 이 모든 게 우연은 아니죠. 은영씨는 태풍 예보에도 와서 태풍을 날려 보낸 사람이잖아요. 하하."

그랬다. 태풍이 오기로 했었다. 태풍 때문에 제주도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했었다. 날씨는 항상 내편이었다는 근거 있는 신념을 믿고 계획대로 온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매일매일 느낀다.

이 길 끝, 저기 집이 보인다.
3일째 해질 무렵이면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제 끝에서 왼쪽 모퉁이를 돌면 빨간 지붕집이 나온다.

이제는 그냥 숙소가 아니라 진짜 내 집처럼 느껴진다. 집이란, 누군가의 생활공간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고 싶은 쉼터이다. 그 쉼터에는 또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따스한 식사, 피로를 씻어내기, 위안, 수면처럼 생명의 필수적인 부분을 채워준다. 그리고 가족이 있다. 그렇기에 집은 그 집의 거주자의 마음 곳곳에 회귀본능을 심는다. 그래서 지친 일상의 순간, 고개가 수그러질 때면 어김없이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고개를 들게 한다. 마찬가지로 타향살이에 지친 순간이면 '고향에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고향하면 '고향집'이 바로 연상되는 것과 같이 고향은 돌아가 쉬고 싶은 집이라는 실물 공간과 연결되는 것이다. 제주도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항상 고향이었고 제주평강은 오늘 나의 고향집을 대신한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그래도 내게는 광주라는 고향이 있는데, 왜 광주보다 제주도가 더 고향처럼 느껴질까?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고향집이 재개발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광주 상무대 근처 드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는 마을에 지금은 '상무지구'라는 신도시가 들어서 있어서 내 고향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라진 집에서의 시간들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솔직히 지옥 같은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태어난 광주의 고향집은 아버지와 동일시되었으므로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므로 내게 어떤 회귀본능도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스무 살 성인이 되면서 고향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향집이 가끔 생각이 난다. 고향집의 풍경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눈앞을 스칠 때가 있다. 태어날부터 있었던 연못에서 내 팔뚝만 한 메기가 헤엄칠 때 흐느적거리던 긴 수염이라든지, 호두나무에서 열매를 털고 딱딱한 호두를 감싼 껍질을 신발로 밟아 벗겨낼 때라든지, 초여름 붉게 반짝이는 앵두를 따먹었을 때라든지, 언니, 동생 들과 온 집안 곳곳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면 끝내 다 찾지를 못하고 언제나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다든지, 럭키와 해피의 복슬복슬한 털을 매만질 때 내 손을 핥았던 그 따뜻한 혀의 감촉이라든지, 빠진 유치를 지붕으로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며 노래를 불렀다든지... 그런 햇살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그래서 긴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

태생이라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대부분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지독한 불행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겨울을 견디어내고서, 내가 비로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왔을 때, 의식 있고 괜찮은 선택들을 하려고 애썼다. 그런 선택들이 거듭되고 습관이 되면 내 운명을 내가 정할 수 있다. 내가 내린 선택들이 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태생의 불합리함이나 고통에 대해서도 '옛날 얘기야.'라며 넘길 수 있는 힘을 준다,


오늘 나의 집, 제주평강이 내 뿌리의 집을 소환하며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제주평강에서 나를 기다리는 호스트와 그의 친구, 그녀. 우리 셋이 함께 만나는 날은 아마 앞으로 없겠지만 우리는 오늘 가족처럼 아무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제주와 서울에서의 그들의 삶을 가족처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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