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호스트에게 말했다.
"아리와 두리가 푹신한 이불을 좋아하는데 마루에 도톰한 걸 깔아주실 수 있으세요? 첫날 둘이 제 침대에 올라와서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제가 잠을 잘 못 잤거든요."
"아, 딱 좋은 게 있어요." 호스트는 도톰하고 푹신한 겨울용 담요를 꺼내 마루에 깔아주었다. 냥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담요 위에 자리를 잡고 곧장 다정한 수면자세를 취한다. 완벽하다.
오늘밤 내 수면의 질이 한결 편안해질 걸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아리와 두리의 침상을 확보하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첫날 비가 와서 황급히 돌아와야 했던 애월해안길을 유유히 걷는다.
애월 환해장성을 다시 만나고
드넓은 바다와 대담 중인 벤치를 만나고
짓다 만 집을 만난다. 나는 이 집이 참 마음에 든다. 마치 파도를 타는 서핑보드처럼 기울어진 지붕의 형태가 바람더러 타고 올라오라 부르는 것 같다. 바다를 향한 통창과 하늘에 난 천창, 뒷 벽에 난 각각의 창들이 위, 아래, 좌, 우, 위치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마음에 든다. 벽을 가로지르는 완만한 계단하며 작은 평수가 아이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남편과 나 둘이 살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 집은 어떤 모양으로 지어질 것이며 어떤 모양의 사람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까? 그게 궁금하다.
짓다만 집을 돌아 도로 쪽으로 나와 호스트와 오늘 낮에 갔던 <평균이하 카페> 쪽으로 다시 걷는다. 카페를 지나 야트막한 경사면이 있는 길 쪽으로 향해 걷는다. 때마침 저물어가는 태양이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고 경사면의 저 끝, 너머에는 무엇이 펼쳐질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저물어가는 빛이 밭담의 돌덩이 사이사이까지 강렬하게 비집고 들어간다. 어두웠던 틈은 일순간 빛의 통로가 된다.
빛은 농작물을 심기 위해 보드랍게 갈아놓은 밭 위에도 쏟아져 내린다. 맨발로 걸어보고 싶다. 저 흙에 발이 닿으면 내 몸에서 초록잎들이 자랄 거 같다.
오르막 끝에는 새완이 농경로 표지석이 보인다. 농민들이 만들어낸 농경로이다. '새완이'라는 길 이름은 마을의 옛 지명을 딴 것이다. 농지 사이에 길이 없던 맹지 소유주들이 자신의 밭으로 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밭을 지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농지의 소유주가 바뀌면서 어떤 밭주인이 자기 밭을 못 지나가게 막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19명의 맹지 소유주들이 각자 십시일반 땅을 기부했고 도가 도로를 짓는 비용을 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닿아 밭과 밭 사이의 길과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새완이 경작로를 따라 걷다 보니 곽지해수욕장으로 가는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온다. 길은 항상 어디로든 이어질 수 있다. 길과 관련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고향》중에서-
길은 곧 희망이다. 그 희망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외따로 떨어진 채 토막 난 길은 길이 아니다. 길과 길은 연결되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외따로 떨어져 홀로 살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어야 한다. 길과 길은, 사람과 사람은, 길과 사람은 희망의 연대를 이룬다. 나는 오늘 길과 길을 이어준 사림들과 새로운 희망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