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끄적끄적
우리는 어린아이 일 수록 표현에 솔직해지는 편이다. 왜냐하면 만약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우린 오그라드는 그 상황을 못 견뎌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그 상황을 못 느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한 번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부끄러움이나 쑥스럽다는 감정은 사라진다. 오히려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이 도드라진다. 싫어하는 감정이든 아니면 좋아하는 호감의 감정이든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은 점점 그 아이들이 자라나 하나의 사회 구성원이 될 때 그것을 숨기는 것부터 배우는 것 같다.
직장 상사가 별로면 그 감정에 대한 티를 내지 않아야 하고 오히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신적인 피로가 배로 몰려오는 것 같고 우리는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들어온다. 물론 '모든 걸 다 참지 마.'라는 건 아니다. 위와 같은 상황은 나의 생계형 수단이기 때문에 그때는 당연히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만약 연인과의 관계나 가족, 친구, 지인 등의 관계에서 표현을 아예 안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건 일단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테고 이뤄진다 하여도 그건 일방적인 소통도 될 수가 있다.
표현이 없다는 건 나의 말에 호응이라는 감정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의 연인의 대화에서 "오빠, 나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너무 힘들었어. 안 그래도 힘이 든데 말이야."라는 말에 공감이라는 표현이 사라지면 "아, 그래? 안 됐겠네."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공감이라는 표현이 상실이 됐다. 그럼 어떻게 말을 하는 게 옳을까? "어, 그래? 진짜 힘들었겠네. 나도 너 요즘 힘들어 보여서 마음이 쓰였어. 오늘 데이트로 마라탕 어때? 너 좋아하잖아. 그걸로 풀자."라고 한다면 그건 공감의 표현이 제대로 된 정답 답변 중 하나다.
이처럼 표현이라는 것은 우리의 대화나 행동에서 사라지면 그야말로 '내 말의 뜻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과 다르게 전달이 될 때가 많다. 만약 아기가 배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 등 내내 웃는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럼 아기의 엄마는 아기가 배고플 때라던가 아니면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 제때 필요한 것을 못해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표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배고프면 울고, 조금만 불편해도 울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모님에게 알렸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가까운 부모님에게라도 "사랑합니다."라고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