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끄적끄적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느끼는 '자유'가 있을 것이고 미국 뉴욕시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자유 뒤에 오는 '책임'인 것 같다. 자유라는 것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책임은 '어떤 일에 관련이 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이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어떤 일에 자유를 집어넣는다면 '자유'에 관련이 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유롭게 인생을 산다고 해서 책임을 멀리 하면 안 된다. 만약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결과에 빠져 도리어 자유에 대한 구속을 받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구속을 받을 때 자유로운 시절을 그리워하며 후회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 뒤에는 그만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 화자는 항상 자유 뒤에 오는 책임을 지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20대의 자유보다 30대의 자유에 감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물론 30대의 자유가 다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만약 지인과의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을 전 부 다 둘러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가 나쁜 일들이 많다고 하지만 부모님의 불안감을 좀 더 덜어드리기 위해서도 있긴 하다. 그렇다고 화자의 지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 다 좋고 착한 사람들이기에 일부러 더 둘러서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화자는 집에서 통화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누구냐?"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할 때도 있고 귀찮기도 하지만 뒤에 오는 잔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
그래서 밖에 나가 자취를 1년을 해본 결과 정말 살기 힘들었다. 자취를 하니 나가는 돈이 배로 늘어나서 하루종일 사발면을 먹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코로나가 초반에 생겼을 때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때가 내 기억으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그 사이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심해질 무렵, 일을 그만두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짧은 글부터 어떻게 보면 긴 글까지 다양하게 적었다. 거기에 소설 한 스푼도 들어가 있다. 나중에 소설을 단편이나 중단편으로 올릴까 생각 중에 있긴 하다.
나는 글을 쓸 때 글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 생각을 펼치는 편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내 글은 정말 쉽게 쓴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1편당 30분에서 1시간이면 다 적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세이를 쓸 때 한정이지만 말이다. 소설은 그 내용이 전부 내 머릿속에 구상이 되어 있으면 넉넉 잡고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면 한 편은 쓴다. 근데 소설은 에세이 보다 더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나서 그냥 나만의 글 저장고에 썩혀두는 편이긴 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연재를 한다고 했을 때, 독자들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책임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은 단편과 장편을 쓰는데 힘든 점들이 있는데 단편은 내용을 짧게 끝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고 장편은 '이걸 내가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압박감이 느껴져서 제대로 끝내기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요즘 화자는 소설을 잘 쓰지 않고 있다. 물론 화자가 소설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 또한 거의 한 달 반 분량을 저장을 해놓고 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몰라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