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끄적끄적
요즘 들어 우리 집 강아지 뚜비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우리 막내 이모가 생각나기도 한다. 다들 살아서는 볼 수 없지만 언젠가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옆에 가까이 있을수록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른다. 그건 언제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쭉 볼 수가 없을 때 더 생각이 나고 더 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난 막내 이모 장례식에 못 갔다. 그냥 가족들 이서 조촐하게 하자는 의견들이 있어서 외삼촌과 이모들 이서 화장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막내 이모를 볼 수 없다는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모를 볼 수 없다는 느낌이 현실이구나 느끼게 되었다. 그건 우리 가족의 입에서 이모의 이야기가 점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가끔씩 나올 때도 있지만 그건 그때 한 순간뿐이었고 이모의 이야기는 어렴풋이 금기시되는 단어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서로 보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어머니는 종종 가끔 '내 동생 보고 싶다.'라고 하신다. 그럴 때 나는 모르는 척을 한다. 그 이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가신 이모를 대신해 줄 수 없는 걸 알기에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종종 우리 뚜비를 생각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자는 외동이기에 동생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돼서 강아지로 대신했다. 그래서 뚜비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종종 생각이 날 때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더 잘해줬을 텐데 하고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어머니도 가끔 그런 기분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전부 다 이해를 해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결혼을 해 서울로 올라가실 때 막내 이모 또한 자신도 데리고 가길 바라셨다. 근데 어머니 형편이 여의치 못 하셨다.
왜냐하면 시집살이가 그다지 좋지 못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또한 그렇게 어머니한테 다정다감한 존재는 아니셔서 더 그랬던 것 같았고 전형적인 그 시대의 시집살이었기에 좋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부모님 사이에 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이 된 것 같다. 정말 필요한 상황만 빼고는 같이 어딜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한 번 제주도 여행을 가자 하고 비행기 표까지 끊었다가 취소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시대에 내가 있지 않았기에 어떤 인생을 어머니가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인생이 아님을 눈치로 알기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조금 더 나은 시집살이를 했다면 이모를 부산에 두고 와야 했다는 그 죄책감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아도 되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아버지가 미울 때가 있긴 하지만 이미 떠나간 사람은 보내주어야 함을 알기에 평소처럼 웃으면서 대한다. 그러면서 보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고 뚜비와 막내 이모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뚜비와 이모가 떠난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