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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륙 Dec 15. 2023

RED #6 관능

RED로 ( )을 말하다. 그리고 그리다.

그저 탐욕이라고 해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목을 사로잡다 못해 온 신경을 비틀어 움켜쥔 그 강렬함은 아름답다는 단어가 감히 품을 수 없었다. 그건, 세상의 모든 빛깔을 흡수해 욕망의 한계 너머까지 복종시키겠다는 정복자의 야망 어린 서슬이었다.


단조롭고 지루한 무채색만이 흐르는 세상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빨간 물감처럼, 당신은 그렇게 발현했다.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적은 날카로운 기세로 모든 것을 사로잡는 동적인 고요였다. 


유혹이라는 천박한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고풍스러웠다. 

우아하다 하기에는 과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그대는 잔인할 정도로 자신의 기질을 꿰뚫고 있다. 노력을 내비치지 않아도 이미 모든 이의 시선을 남김없이 거둬들이고 있기에. 설령 누군가의 이목을 놓쳤다 한들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도 안다. 그건 단지 신성을 거부한 무지몽매한 이의 죄로 기록이 되고 말 것이다.


의도된 정적 속에서 그대는 날카로운 이빨을 아주 살짝만 드러내고 싱긋 웃는다. 시야를 빼앗긴 무채색의 군중 사이에 새빨간 긴장이 어린다. 이다음에 그대가 어떤 일을 일으키든, 이미 정복당한 이들은 기꺼이 저 이빨에 뛰어들게 되겠지.


한 방울의 점이었던 붉은 정적은 느린 속도로 길게 늘어나듯 흐른다. 무채색의 땅이 소리도 없이 함락된다. 흐름은 비웃듯이 속력을 올린다. 점점 더, 더 빠르게 욕망의 눈빛들을 집어삼킨다.


무색무취의 한 사람인 나는 이를 담담히 지켜본다. 아마도 나에게 어떠한 색이나 향이 있었던 것 같긴 하나,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임을 알기에 내던진 지 오래다. 한 걸음, 한 걸음, 관능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곤 주저 없이 뛰어든다. 


치명적으로 살갗을 파고드는 시뻘건 색조와 향을 만끽한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괴성을 지르며 환희를 표한다. 문득, 경멸 어린 눈빛과 마주친 듯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자유 의지마저 나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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