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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륙 Dec 15. 2023

RED #2 분노

RED로 ( )을 말하다. 그리고 그리다.

분출하듯 터진다. 그리곤 이내 삽시간에 모든 것을 산산이 조각낸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살갗 아래에 몰아쳐 온몸을 휘감는다. 

모든 감각이 폭발에 동조한다. 자극적으로 강한 진동은 거칠게 몸집을 키워 진한 독을 퍼뜨린다. 흥분에 잠식당한 신경이 전신을 관통하듯 날뛰며 파동을 일으킨다.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붉다. 통제되지 않을 만큼 붉은 고통이 휘몰아친다.

그 안에 잔인한 기대감이 역하게 섞여 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조우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아마 이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숨죽인 채 진하게 끓어왔겠지.


마침내 영혼마저도 내면 깊숙이 파먹힌다. 이제 독은 나약한 신체를 빌어 나의 세상을 할퀴고 생채기를 내기 시작한다. 쟁탈당한 나의 입과 손은 솟구치는 독을 하염없이 흩뿌려 내가 사랑하는 이들마저 해치고야 만다. 그토록 오래 읊조렸던 독한 반항을 사정없이 토해내려고 숙주를 이다지도 세게 움켜쥐었나 보다. 


숙주의 생명력이 다 해간다. 울분 어린 난폭도 점차 수그러든다. 남은 것은 갈기갈기 찢기고 불타버린 육신과 영혼과, 마지막까지 남몰래 붙들고 있던 희망이었던 것의 잔해뿐.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던 분화구도 결국 이렇게 벌겋고 혐오스러운 흉터로만 변해가겠지.


분노란 늘 그런 식이더라. 시작도, 끝도, 아프도록 붉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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