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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비 Dec 10. 2022

노르웨이산 가구

원산지의 환상에 대한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노르웨이의 숲’과는 다르게 원작 ‘Norwegian wood’의 서사는 간단하지만 좀 더 과격하다. 이 노래의 서사는 이렇다. 어떤 여자와 마음이 맞아(결국 본인만의 생각이지만)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와인과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여자는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먼저 자야겠다며 주인공을 내버려 둔 채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기대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고, 애만 태운 것이다. 주인공은 하는 수 없이 취한 몸을 욕조에 뉜 채 잠든다. 다음날 눈을 떠 보니 여자는 사라졌고, 그는 홀로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는 그 여자의 집에 불을 지른다. 그러면서 "노르웨이산 가구라니,, 좋지 않아?"라고 말한다.


비록 전개는 과격하지만, 서사를 요약하면 단순하고 흔한 일이다. 밤을 줄 것 같았던 여자에게 공을 들이다가 허탕을 친 남자의 이야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밤에도 비슷한 수많은 이야기가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허탕 친 남자들은 여자의 가구 대신 자기 담배를 태우고, 감미로운 노래 대신 욕설을 뱉는다.


어쨌든, 숙취에 절어 불편한 잠자리에서 일어난 주인공은 노르웨이산 가구를 찾아 불을 질렀다. 당시 영국에 노르웨이산 가구가 유행했다곤 하지만 주인공이 가구에 조예가 깊어서 단번에 알아보고 불을 지른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전날 밤, 여자는 곧 불타 없어질 것도 모른 채, 자신의 가구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어댔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턱을 괸 채 관심 있는 척 들어주고 있었을 것이다. 실은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가구는 그녀 방의 침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남자도 그 가구가 불에 타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남자는 분노에 가득 차 ‘내 환상을 불태워버렸으니, 너의 환상도 불에 타버려야 마땅해’라는 생각으로 불을 지른 것 같다.

환상에는 환상으로 보답해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ㅇㅇ산, ㅇㅇ제는 판타지 같은 것이다. 가장 많은 환상을 품은 곳은 역시 이태리이다.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자신의 츄리닝은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제작했다며 구린 디자인을 원산지로 변호한다. 원산지란 이런 것이다. 옷이 아무리 별로라 한들 변명이 되며,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설령 이태리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그 공정 과정을 정확히 지켜보지 않은 사람도 홀리게 된다.


우리도 영국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물론 꼭 환상 때문에 바잉을 하고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원산지에 환상을 갖게 된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긴 하니까. 실제로 옷의 만듦새, 디자인, 인정받아야 마땅한 역사 등 정말 많은 요소가 MADE IN ENGLAND라는 글자에 녹아있다. 특히 빈티지 제품에는 좀 더 진득하게 녹아있다.


그래도 영국제를 고집하는 제일 큰 이유는 역시 환상이다. 패션이란,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문화란 결국 환상이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고, 다시는 느낄 수 없다. 되돌아오는 것 같아도 포스트 혹은 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오는 재현이다. 굳이 따지면 문화의 이데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웨비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샵이라기보단, 환상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환상을 느끼며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같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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