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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Dec 22. 2021

빈자리

일상찾기

시댁에서 보내준 햅쌀로 밥을 앉혔다.

구수한 밥냄새를 기대하며 밥솥을 열었는데

어롸? 쿰쿰한 밥내가 올라온다.

"어? 이게 무슨 냄새지?밥 냄새가 왜 이래?"

혼잣말을 하며 괜히 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예전이라면 이럴 때 분명히 여사한테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 유여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밥솥이 다 되서 안카나. 한 10년 나? 저 밥솥. 꼬물 밥솥 인제 좀 버리라. 바깔 때 됐다. " 러면 나도 지지 않고,

"아니거든, 7년 뿐이 안 돼쓰~ 아직 쓸만 하거든. 아~ 머가 문제지." 하 팩트를 체크 시켜 주고.

"그라믄 빠킹이 나갔는강. 마트가가 빠킹 사가 바까 보자." 하며 유여사는 득달같이 우리집으로 달려 와서는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밥솥 보러가자." 라고 찮게 했을 이다. 


냄새나는 밥솥 앞에 한참을 성이며 마치 빠져 려 짝버린 나사못 자리처럼 하나씩  나가 버린 일상 빈자리를  머릿속 회상씬 으로만 더듬 완성해나가 본다.

'에라이~ 오늘은 햇반으로 볶음밥이나 해먹자.'

밥솥따위야 될대로 되어버려라.



오후에 작은언니에게 병원은 가보았냐고 연락을 했다. 작은언니는 코로나 2차 접종 후에 거의 3달 간인 지금까지 생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백신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갱년기증상인지 모르겠단다. 물론 석달을 매일은 아니고 3일을 피를 흘리 이틀은 멈추고 그러기를 반복중이라 했다. 처음에 그런지 한달쯤 되었다 했을 때, 큰언니랑 나는 병원을 가야한다고, 얼른 가보라고 잔소리를 지만 작은언니는 알겠다고만 했다. 아마도 유여사가 있었더라면 작은 언니는 벌써 둘이서 손을 잡고 함께 병원으로 뛰쳐 갔을 것이다.


나와 큰언니는 자식이 셋 이나 생기면서 혼자서 하는 일들이 많아진, 아니 정확하게는 혼자서 하는 것이 더 편해져서 대부분의 것들을 혼자서도 해내는 삶을 게 되었다. 아, 나는 아직 식당에서 혼자 밥먹는 것은 못 하겠더라만은, 그것을 제외한 병원가기며 마트며 백화점이며 문화센터며 운동이며, 대부분의 것들을 나는 혼자하는 것오려 좀 즐거운 편이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시간을 맞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더 곤란한 일라는 것을 어디로 튈지 모를 육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육아로 일상의 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 나는 혼자서 후딱~ 요한 것만 딱딱, 쇼핑을 하면 시간을 몇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절약으로 얻게 된 그 황금같은 시간은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삶의 지혜같은 것을 터득했다.

누군가와 함께 쇼핑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아~주 여유있을 때, 그들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취미는 활동같은, 그런 사치스런 시간들이었다. 물론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에는 혼자서 급하게 필요한 것을 사려고 나서는 일이 무안하고 왠지 외톨이같이 느껴 지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은 나를 이렇게 단련시켰다. 그 단련의 시간들 에도 유여사 잔소리는 존재했다.

"니, 그래 나가서 싸 댕기다가 집에 오면 또 바쁘게 집안 해샀는다고 싸대다 병난데이~ " 하는 유여사 잔소리가 내 시간은 몽땅 없이 살아야하는가 싶은 야속함에 아니라고 부정해보지만, 사실은 거의 다 꼭 들어맞았다.  

"됐거든~ 나도 내 삶을 찾아 내 시간도 즐기며 살거거든~" 하고 되받아 치고나믄 꼭 몸에 탈이 났다. 

가끔은 내 인생 전반적인 윤택함을 위해 나의 시간들을 포기할 줄 아는 것도 나의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작은언니는 우리들과 생활패턴이 완전 달랐다. 자식이 없어서 정서적인 독립을 할 필요가 없이 온전히 나 중심적인 삶을 누렸다. 아이가 없는 작은언니는 나와는 달리, 여유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나름의 방법 오히려 혼자서시간을 보내지 않기인 듯 했다. 혼자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의 삶을 사는 작은언니를, 우리는 서로 부러워도 하고 가끔은 서로 쨘해 하기도 했다.

그런 작은 언니의 옆자리는 제자식뒤치닥거리로 바쁜 언니나 여동생보다 유여사가 가장 많이 차지했다. 작은 언니 혼자서 자질구레한 일을 할라치면 언제나 유여사가 출동했다. 유여사 눈에는 작은언니가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해 보인다했다. 


나나 큰언니가 손을 잡고 나서야만 작은 언니는 병원을 다녀올까, 유여사의 잔소리가 허공에 맴도는 느낌이다.


형부랑 같이 병원에 다녀온 작은언니는 자궁에 물혹인지 핏덩이인지 알 수 없는 먼가가 생겼다며 의사가 큰 병원에 가랬다고 한다. 어차피 무언가 몹쓸 것이 생겼다면 제거를 위한 치료든 수술이든 받아야 할 것이니 대학병원으로 가겠다했다.

[그래 잘 했다. 너무 걱정마라. 별치 않을 끼야..] 하고 메세지를 남기려는데 가슴이 또 싸리하게 허전해져 왔다. 즉에 병원에 가자고 채근했어야 하나. 유여사의 잔소리가 또  귓가를 맴돈다.


우리들 자매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여사어디선가 제일 먼저 원더우먼처럼 달려 와서는

"머라카노. 내 지금 가는 길이다. 당장에 병원가보자." 했을 것이다. 특히 겉으로는 젤 강단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전문이지만 오려 속은 젤 상처 작은 언니를 유여사 알고 있다.


유여사는 작은 언니의 생일이나 무슨 날에는 꼭 챙겼다.

"자식새끼 있는 너거는 너거들끼리 파티해라. 진이는 내가 미역국끼리 줄란다." 며.

런 별난 둘째 챙김이 하나도 섭섭치 않은 것은 또, 내가 고된 육아살이에 몸살이라도 날라치면 유여사는 또 그렇게 원더우먼처럼 출동을 하니까.

설거지라도 하려고 서성이는 내 등짝을 후려치며,

"씰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마이 가 누벘거라."

"내비둬라. 가 누버라. 골골 거림서 뭣을 한다꼬. 냉중에 늙어가 시껍하지말고 니 몸 단도리해라이" 하는 엄마의 등더리 너머로

"놔둬라. 잇다 내 하께." 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엄마는 우렁이색시처럼 잠시 동안에 온 부엌을 반짝거리게 딱아 놓고 베란다에 몇 년은 되었을 쓰레기들을 싹 정리해 두곤 사라졌다.




" 병원은 언제 가노? 갈 때 같이갈까?" 심란한 목소리의 작은언니에게 묻는다.

"아니다. 낼 문씨 출근하는 길에 같이 갔다가 가기로 했다. 혹시 입원해서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병원에 좀 와 있든지." 한다. 큰언니랑 둘이서

"알았다. 병원에는 우리가 벌갈아 가 있으면 지." 했다. 

 우리모두에게 구멍이 훅 뚫린 것처럼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잔병치레가 유독 많은 작은언니가 아플 때마다 젤 먼저 따라나서서 병원을 지키고 있던 그 빈자리.


이제 어쩔 수 없이 빈자리는 하나씩 하나씩 우리들 서로가 채워 갈 것이다.

그러니 서러울 일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추억이 되어 갈 일이다.

우리들의 이 허전한 빈자리를 그렇게 찬란하게도 메꾸어 주던 빛이 나던 시절의 그녀가 있었다고.

기억하고 추억하며 따스함을 얻어 가리라.

빈자리가 더 촘촘하게 메꾸어갈 기운을 얻려고 수시로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며 살아가리라.



정밀검사를 받으러 간 작은언니가 해맑게 롯○타워라며 사진을 보내온다.

어제 오후에 숙소를 더블룸으로 예약해놓고서는 침대가 하나뿐이고 툴툴거리는 작언니에게, "내가 예약해준댔잖아. 트윈룸으로 해야 침대가 두 개라고~! 가서 바까달라캐바. 내 전화해주까? " 하고 잔소리를 했다.

차에 멀쩡하게 달린 네비를 두고서 아직도 휴대폰의 티맵을 켜고 핸즈프리, 블루투스따위 머하는 건지도 몰라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전화를 받는 기계치 언니가 간만에 서울나들이라고 여기저기 맛집을 찾아다니며 사진들을 보내 온다. 

그런 작은 언니가 나도 유여사처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어뜩 무사히 귀가하라고 잔소리를 한 판하는 카톡을 보내야 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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