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솥이 데워질 동안 김치를 엄지손톱만하게 잘게 썰어 간장, 설탕을 살짝씩 뿌려서 맛나게 볶아 낸다. 파기름을 내면 더 좋으련만 파가 없네.
매콤달콤하게 볶아진 김치와 총총 썰은 노란 단무지를 밥 위에 색감을 살려 올리고 냉장고를 털어 햄이며 참치를 꺼내 밥 위에 또 곱게 올려 본다. 오늘은 지난 번 자가격리 기간에 지원물품으로 받은 후 방치되던 고추장볶음 통조림을 올려 보았다. 마지막에는 냉동실의 날치알을 한 덩이 올려서 돌솥 뚜껑을 덮어 적당히 눌켜 준다.
빠샤삭 피식, 피식~ 김치볶음이 섞여 간이 밴 밥이 꼬슙게 눌켜 지는 냄새가 살살 올라 오면 마무리 부족한 간은 고소하고 짭쪼름한 치즈를 솔솔 뿌려서 녹여 주면 끝이 난다.아참, 먹기 전에 김가루를 솔솔 뿌려 주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생각보다 엄청 간단한 레시피지만 비쥬얼은 또 빛이나 주신다.
방학이 되었다.
방학이 되면 초딩이들의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간단하고 맛있게 한 그릇으로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의 식단을 연구해 본다.
특히나 입맛이 완전 다른 우리 집 세녀석들 모두에게 딱 맞는 메뉴를 찾아 내기는 너무 힘든 일이다.
그나마 두루두루 좋아하는 메뉴는 고기반찬과 김밥?정도이다. 아마도 방학 기간 동안에 보통 일주일에 1회 이상은 김밥을 싸는 것 같다.
지난 번 어느 방학에는 아침 8시에 시계를 보고 아이들을 언제 깨울까 고민을 하며, 김밥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해서 김밥 12줄을 말아 삼남매의 취향대로의 김밥을 각자 그릇에 담아 놓고 아이들을 깨우려고 시계를 보니 정확히 8시 30분이었다. 30분만에 김밥 12줄을 싼 내 손을 잠시 쳐다보다가 김밥 사진을 찍었다.
#정확히 30분만에 싼 김밥12줄... 이라고 해시태그를 걸어 놓고는 이렇게 빨라진 내손이 만들어 내는 일상을 잠시 토닥토닥 위로해 주기도 했다. 빨라진 내 손을 활용하여 나중에 김밥 장사를 하면 굶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깨웠다.
개성 강한 삼남매가 다 같이 좋아하는 몇 안되는 메뉴인 김밥도 3가지버젼으로 준비한다.
1번은 청양고추는 듬뿍 썰어 넣지만 오이는 절대 넣지 않은 참치김밥을 준비해놓고, 참치나 치즈를 먹지 않는 2번은 기본 재료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야채김밥으로, 3번은 치즈가 들어 가지 않으면 김밥을 먹지 않는다.
3500여 개의 음식 사진첩을 뒤져 찾아낸 김밥3종세트
고기종류는 1, 3번은 양념이 되지 않은 맹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고 2번은 간장 양념이 된 돼지갈비를 가장 좋아한다. 또 1번은 돼지고기, 특히 삼겹살파이고 2, 3번 소고기파이다. 2, 3번은 돼지고기는 삼겹살보다는 목살위주로 골라 먹는다. 국민음식인 치킨도 우리집에는 1번과 아빠는 후라이드파, 나와 2번은 무조건 양념치킨파이고 3번은 아직 정체성이 모호하다.
각자의 개성에 맞춰가며 취향대로 챙겨 먹이려고 애쓰는 나를 주변에서 귀찮아서 우째 그리 하냐고 하지만, 이미 나에게는 치즈 한 줄, 참치 한 캔 더 따는 일은 그리 번거롭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어쩌다보니 셋째가 태어나 다자녀의 엄마가 되면서 엄마로써 내가 다짐한 것은... 다짐까지는 그렇고 마음먹은 일은, 내가 가능한 범위에서는 세 녀석의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4남매 중에 막내였던 나는 알고보면 참으로 개성이 넘치는 아이였지만 남들보다 다채로운 가족구성원들 속에서 나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자랐다. 엄마가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다녔고 언니, 오빠가 맛있다면 맛있는 줄 알았고, 예쁘다 하면 예쁜 줄 알았다.
그러다가 사춘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20대가 되어서야 내가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좋아하고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무채색보다는 분홍색과 갈색톤이 어울리는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되었고 나는 처음부터 내 아이들이 각자의 색깔을, 각자의 입맛을 예민하게 알아채서 본인의 취향을 당당히 존중받는 삶을 살기를 바랬고,최대한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밥상을 차려나는 번거로운 엄마의 길을 은쾌히 선택했다.
지난 일주일은 일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은 커녕 내 점심도 챙겨 먹을 여유가 없었다. 나보다 더 바쁠 예정인 예비 고3인 1번은 집에서 점심을 먹는 날이 거의 없고 집에서 밥을 먹더라도 14살 이후로는 본인의 끼니는 거의 스스로 해결을 하는 편이라 밥을 먹는지 마는지 신경을 딱히 쓰지는 않지만,ㅡ 사실 살짝 덩치가 우람한 편인1번은 한끼씩은 거르는 일을 더 칭찬할 판이다. ㅡ
아직 초등생인 2번과 3번의 점심은 방학때마다 식단표를 작성해가며 고민을 한다.
요번 방학에는 일부러 울집 초딩이들을 위해 수업시간을 요리조리 머리를 써서 점심시간 1시간을 비워 놓는 시간표짜기에 성공했는데 안타깝게도 2, 3번의 일정들이 내가 어렵게 짜놓은 점심시간을 비켜갔다.
예비 중학생인 2번이 스스로 간단히 데우기만 하면 동생까지 챙겨 먹일 수 있게끔,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중에 미리 점심을 준비해 두었다.
그 마저도 여유가 안났던 아래께는 열정적으로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설명하다가 점심을 굶고 있는 두 녀석에게 급하게 수업 중에 햄버거를 주문해 주었다.
내 수업을 끝내고 보니 각자 햄버거 하나씩을 챙겨먹고 영어로, 태권도로 가버린 우리집 두 초딩이가 남겨둔 햄버거 종이를 치우면서 현타가 왔다.
종종 바쁘다는 이유로 나와 아이들의 끼니를 제대로 못 챙기게 될 때에는 ㅡ 나는 진짜로 끼니에는 진심이 아니라고 늘 주장하면서도 ㅡ 사실은 이럴 때 가장 서글픔이 밀려 온다. 끼니도 못 챙기며 이렇게 바쁘게 사는일상에게 미안하달까.
무슨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이렇게 용을 쓰며 살고 있나 하는 허탈감이랄까.
이럴때면 또, 우리들의 유여사가
"멋이라~ 똥강생이들이 밥을 못 묵었다고!!!!" 하며 출동했는데 그 빈자리도 또 티가 났다.
방학때면 끼니에 늘 진심인 외할머니가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러 오거나, 내가 진짜로 바쁠 때는 각자 잠옷 보따리를 챙겨 외할머니 아파트입구에 내려놓으면 신나게 달려간다. 엄마는 쉬이 허락치 않은 과자 파티와 치킨 파티로 실컷 배를 채우고서는 놀이터에서 종일 뛰어 다닐 재미로 방학을 기다리던우리집의 1, 2, 3번들의 공통된 초등시절의 일상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저녁에 식단을 다시 짜고 더 간단하지만 신박한 메뉴를 고민해 보려고 앉았다가 알밥을 떠올렸다.
내일은 요리가 배우고 싶다는 2번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점심을 해결하겠다며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한다.
지난 주엔가는 1번, 2번 두 자매가 둘 다 좋아라하는 엽떡의 레시피를 너튜브로 다운받아 둘이 머라머라 깔깔깔거려대더니 떡볶이의 형상을 한 요리를 한 접시 만들어내서는 스스로들에게 뿌듯해하며 나에게 자랑을 했다. 생각보다 에법 먹을 만해서, - 물론 자기들만의 비법이라며 불닭소스를 들이부어, 60% 이상이 불닭소스의 맛이었다만은 - 그래도 먹을 만하다는 데 의의를 두고 열정적으로 먹는 중에 사진을 한 장 남기며 오늘을 기억해두었다.
#딸들의_첫떡볶이 ㅋㅋㅋ
남은 방학기간동안 끼니도 못 챙겨 먹는 일상의 서글픔이 갑자기 몰려 오지 않도록 미리 미리 레시피를 연구해 놓아야겠다.
백선생님, 수미선생님... 누구네 레시피라도 절실하다. 이 분들께 어찌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오늘은 밤새 너튜브라도 돌려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