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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Sep 13. 2022

어느 고삼(3)이의 아침

오전 6시. 타다닥타닥.

잠결에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급히 끌어다 신고는 우리집 고삼이의 방으로 향한다.

"야! 이땡지! 일어나라. 6시다."

고삼이는 오늘도 여전히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서 미동조차없다. 데시벨을 한 단계 더 높여 본다.

"야, 일어나라고. 오늘은 씻어야 된다미?6시다!"

그저서야 고삼이는 거대한 몸뚱아리를 이리저리 비틀어대며 '으이익'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낸다. 겨우 한 쪽 눈을 뜨고서는 간신히 손을 더듬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다시 낮은 소리로 속삭인다.

"아,  되겠어. 6시 30분에 다시 깨워. 안 씻고 그냥 갈래."


으이그. 내 그럴 줄 알았다. 밤에 미리 씻고 머리카락을 말리고 개운하게 자라고 해도, 꼭 밤에는 여유부리면서 아침에 씻는 게 더 개운하다나 머래나 하더니.

정작 아침이 되면 깔끔한 외모는 30분의 아침잠이 주는 달콤한 피로회복에 번번이 좌절되고 오늘 아침우리 고삼이는 다소 떡이 진 머리카락은 쿨하게 감내하는 용기로 개운한 늦잠을 선택했다.

데시벨을 더 높여서 제대로 정신이 들게 깨워 볼까하는 도전정신이 발동하지만, 다시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간 저 이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터이다. 나도 잰걸음으로 후딱 내 침대로 돌아가 30분 이라도 더 자자. 그래, 그게 서로에게 이롭다.



오전 7시.

현관 앞에서 아버지가 고삼이의 방을 향해 외친다.

"크니, 내려 와라. 시동건다. " 하고 집을 나선다. 

아빠의 뒷통수에 대고

"오케이~" 하며 기분좋은 대답을 하고서도 고삼이는 꿈쩍도 않는다. 아직 파자마차림이다.


7시 5분.

날카롭게 예의 주시만 하다가 참지 못하고 방으로 향한다.

"야, 빨리 내려 가. 아빠 7시에는 출발해야지, 지각 안 한다잖아" 창문 아래로 남편의 차를 내려다보며 고삼이에게 소리지른다.


며칠전에 술이 흥건히 취해서 귀가한 남편이 푸념처럼 늘어 놓던 말들이 머릿 속을 떠나지가 않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출근시간보다 늘 1시간 일찍 출근하믄 했지 늦은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인데 요즘 큰 딸래미때문에 '회사 좀 일찍다니자'는 소리를 다 들어보네. 허허, 참..."


고삼이의 문을 벌컥 열어 본다.

"알겠다고! 다 했다고!"

이렇게 앙칼지게 외치는 그녀는 아직 생활복도 갈아입지 않고서는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야! 아빠 먼저 가라고 전화한다." 하고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나서야,

"아, 진짜! 간다고!" 하며 현관문이 쾅!닫힌다.

양말이며 교복치마며 체육복잠바를 손에 주섬주섬들고 한껏 여유로운 걸음으로 정확히 7시10분에 아빠 차에 오르는 모습을 내려다본다.

아. 이제 갔구나. 저녁까지는 네 존재를 잊어버리리라. 굳게 다짐해 본다.



지각과의 끈질긴 싸움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이었다. 우리집 아이들의 중학교는 아파트 입구를 나서기만 하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아파트 입구 교차로에서 대각선 지점에 중학교 교문이 위치해 있었다. 아마 고층으로 올라간다면 학교 운동장도 내려다 보이리라.


어릴 적부터 나는 친구들 중에서 학교에서 가장 먼 곳에서 살느라 통학시간이 최소 30분 이상이 걸렸다. 하교할 때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가고 나면 늘 마지막은 나 혼자 남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문을 나서면 바로 집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그러한 연유로 30년 가까이 된 이 낡은 아파트의 입지조건을 나는 도무지가 포기할 수가 없는데 이런 내 심정을 고삼이가 과연 알까?


집을 나서자말자 횡단보도 두 군데를 건너면 바로 학교인 말도 안되는 입지조건 속에서 자라난 아이이건만, 아침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등교한다. 어느 해엔가에 참 따뜻한 담임선생님은 늘 이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일부러 여유롭게 따라 들어가시기도 했단다.


직선거리로 300m쯤 되려나, 정확히 검색해보니 도보거리 262m라고 나오는 위치의 학교라서 신호만 잘 받으면 1분이내 도착이고, 신호가 바뀐 뒤에 나선다해도 6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저 아이는 늘 간당간당하게 움직였다. 10분만 서두르면 여유로울 텐데... 라는 잔소리는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도 또 희안하게 지각(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는 지각은 1교시 수업 후에 등교하는 것이 공식 지각이라고 저 아이에게 수없이 들었다.)과 결석없이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했기에 이제 저 아이의 학교 생활은 내 손을 떠난 일이 되었다. 


저 아이의 사춘기의 대표 멘트인 '내 알아서 한다.'  수백번 들어오면서 이제는 내가 먼저 '제발 니 알아서 해라.' 라는 멘트로 되려 공격할 때까지 우리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나름의 룰이 생겼다.

나는 내 손을 떠난 저 아이의 일에는 쿨하게 미련두지 않기. 또 저 아이는 내가 빡치기 바로 직전은 기가 맥히게 눈치를 채고서는 그 선을 아슬하게 넘지않고 움직이기.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이른 초등 6학년때부터 유별나게 사춘기적 히스테리와 쌩짜증을 부려대더니, 덕분에 우리는 조금 일찍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또 서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생존 전략을 각자 가지게 되었다.



 우리집 고삼이는 9년간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로 통학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가면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족히 20분은 걸리는 등굣길을 나서게 되었다. 고삼이가 되면서 아빠가 7시에는 출발을 한다는 조건으로 학교 앞까지 등교를 시켜주기로 하면서 나와의 지긋지긋한 등교전쟁은 끝이 났다. 그 대신에 요즘은 아빠와는 아침마다 5분 일찍, 5분만, 이라는 새로운 기싸움 중이다.


그나마 다행은 아침에 보내고 나면 저녁 10시까지는 잊어버리는 것이 가능한 고삼이의 학교생활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감사함도 잠시...


 정확히 오전 10시 35분, 고삼이에게서 카톡이 울린다.

[엄마, 이거 좀 주문해 줘~]

스마트한 시대라지만 쇼핑도 너무 자유로운 것 아니니? 어디보자. 오늘은 책이랑 문제집이라서 쿨하게 답장을 보낸다.

[어~ 지금 주문할께.] 고.

웃음 이모티콘은 소중히 마음속에 넣어둔다. 사소한 농담을 날렸다가는 괜히 돈쓰고 욕얻어 먹을 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그러다가 종종 전혀 고삼이의 일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희한한 품목의 주문서가 날라오면, ㅡ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는 회색빛깔의 컬러렌즈를 주문하는 바람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럴 때는 그냥 카톡을 씹는다. 읽씹이든 안읽씹이든 쿨하게 씹자.

그러면 다시 선택권은 고삼이에게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잊어버리거나, 포기를 하거나 그도 안 되겠다싶으면 더 강압적인 협박 문자를 한 번 더 보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본격적으로 파이팅을 해야만 한다. 물론, 저 아이와의 파이팅이겠지만, 가끔은 나 자신과의 파이팅이기도 하다.

그런 자잘한 외모돌봄 따위는 잠시 잊고 학업에만 전념하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욕심일까를 고민하면서 컬러 렌즈를 검색해 본다.



 이상하게 마음이 바쁜 요즘이지만은 서랍 속에 끄적거려둔 글 꾸러미를 하나씩 꺼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일상의 흔적 남기기의 이유라도 나의 글쓰기를 붙잡으려 마음을 다잡고 기록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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