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주 Dec 22. 2022

화목의 비결

19세 딸아이가 들려준 화목한 가정의 비결

"오늘 필마트에서 서머스비가 6캔에 8900원 하드라. 진짜 싸제?"

남편이 신이 나서 20리터 종량제 쓰레기봉지를 내려 놓는다.

"프링글스랑 육포는? 샀나?" 남편보다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기며 내용물을 꺼낸다.

소중한 치킨 앞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서 아빠에게 귀가 인사도 생략한 큰 딸이,

"빨리 손씻고 와서 붙어 앉아라. 치킨 몇 조각 아빠꺼 겨우 남기났다. 지가 쏘는 거라고 혁군이 어찌나 먹어대는지... " 하며 아빠를 재촉한다.


오늘은 우리집 막내인 10세 쌍남자군께옵서 지난 주말에 집안 어른께 처음으로 받아본 5만 원권을 당췌 어찌 써야할 지 주체를 못 하다가 누나들의 꼬임에 홀랑 빠져서 쿨하게 크크크치킨을 쏘기로 했다. 초저녁부터 치킨파티가 벌어졌다가 우리집 냉장고에 살짝 부족한 맥주를 아빠가 귀갓길에 충전을 해 오는 길이다.


'서머스비'는 수능과 모든 입시과정을 끝낸 19세 큰 딸이 처음으로 시도해 본 맥주 중에 가장 자기의 입맛에 맞는 상큼한 사과맛의 맥주로써, 편의점 맥주4캔의 제 3의 멤버로 큰 딸을 끼워주기가 가능해진 첫 캔맥주였다. 큰 딸에게는 오늘이 우리와 함께하는 세 번째 음주의 자리다. 그동안 치킨과 함께 먹었던 콜라는 동생들에게 쿨하게 양보하고 당당히 서머스비 한 캔을 들고 앉았다.


"오늘은 서머스비 오만상많네? 두 캔 가실?" 아직 맥주 한 캔이상은 배불러서 못 먹겠다는 딸에게 아빠가 또 생색을 낸다. 우리들의 위가 생각보다 그렇게 나약하지 않은데 아직은 딸은 음주초보다.


별다른 취미 활동이 없는 남편은 유일한 취미는 맛있는 것을 먹으며 반주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남편은 큰 딸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딸과 맥주 한 잔을 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아빠의 로망을 키워 왔다. 딸의 입장에서는 아빠와 함께하는 음주가 무슨 재미일까 싶지만. 아직 놀아 줄 때 즐겨라.




배도 불러오고 맥주와 치킨과 콜라와 온 가족이 함께하니 우리들은 또 수다스러워진다. 평소에는 과묵한 편인 남편도 이럴때만큼은 수다스럽다.

맥주 한 캔을 거의 다 마셔가던 큰 딸 아이가 여동생에게,

"야, 근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집처럼 재미있고 우끼는 집이 별로 없어. 너도 그렇지 않냐? 다른 친구들 얘기들어보면 집에 있으면 답답하겠다 싶지 않냐?" 한다.

"어, 우리 집은 좀 우끼지. 엄마도 우끼고. 아빠도 우끼고. 식구가 많아서 심심할 틈이 없는 걸까?"

그 우낀다는 표현이 무얼까 나는 궁금해졌다.

우낀다는 표현을 화목하다로 이해해도 될까?


"이정도면 우리 집은 행복하지. 암. 아주 행복한 편이야. " 하는 딸들의 얘기에 그렇게 여겨도 되겠다 싶다. 왠지 절로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행복은 자랑하고 표현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금세 사라져버릴 무지개 같은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언제나처럼 이런 만족스런 순간에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다른 모든 친구네 집들도 다 나름대로 행복할꺼야. 집집마다 행복의 결이 다른거지. 행복과 같은 것은 비교 대상은 아니라고 봐. 우리처럼 우끼게 행복한 집도 있고 고요하게 행복한 집도 있고 그런거지. 나는 좀 고요하고 싶다. " 하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큰 딸의 화목의 비결은 계속 되었다.


1번 : 그런데 우리집의 이 화목의 비결이 먼 줄 알아?

나 : 글쎄다.

이 화목함의 비결은 아빠야.

엥? 오늘 서머스비 6캔을 사왔다고? 이럴 일이냐.

다른 친구들보면 아빠랑 이렇게 친구처럼 지내는 애는 거의 없어.

흠... 맥주 2캔에 골아떨어진 니네 아버지를 다시 불러 앉힐까.

물론 딸바보 아빠들도 있지. 딸에게 모든걸 다 해주는 아빠는 많지. 하지만 그런 아빠들도 진짜 친구처럼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우리 아빠처럼 막 이름을 부른다든지 잔소리하고 소리질러도 되는 그런, 진짜 동등한 위치는 아니야. 근데 우리 아빠는 그냥 우리집에서 우리들과 동등하지. 아니 서열이 가장 아래일 껄. 아빠 배를 두드리며 뱃살 좀 빼라하고 아빠 못 생겨졌다고 놀려도 되는... 그런 아빠는 잘 없지.

그래, 너거 아빠 좀 불쌍키는 하드라. 그만 좀 알로 봐라. (알로 보다 : 낮게 보다. 무시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아빠가 이렇게 편하니까 나는 우리집이 화목한거 같애. 대부분의 안 화목해 보이는 집들을 보면 엄마는 다 좋아. 엄마는 그냥 우리 엄마랑 다 비슷해. 말도 잘하고 같이 잘 놀고. 근데 아빠들은 아니야. 아빠는 우리아빠같은 아빠가 없는거 같애. 다들 아빠가 집안 분위기를 싸하게 하고 먼가 어색함을 제공한다드라. 우리 아빠는 보면 그냥 우낀데.

딸은 딸인갑다. 너거 아빠처럼 재미가 없는 사람을 우끼다고 하는 너들이 나는 참 희안해.

어쨋든가 그런 아빠를 내가 사람같이 만들어 놓았다고. 나도 그 화목의 비결에 지분을 좀 줄래?




"나는 나중에 장인어른같은 아빠가 될꺼야. "

결혼을 한 지 몇 년이 흐른 쯤에 남편이 한 말에 나는 흠짓 놀랐다.

엥? 내가 아빠때문에 얼마나 잡초같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는데 이게 다 무슨소리야? 내 자식들을 얼마나 고생시킬려고.


"나는 장인어른이 딸들이랑 같이 소주 한 잔씩 하는 게 그렇게 부럽다. 나는 아직까지도 아부지한테 존댓말을 쓰고 있고 살면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근데 니는 장인어른한테 아버지라고 불러 본 적이 한번도 없제?"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는 아빠한테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며 존대말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아들은 어찌 될 지 모르겠지만, 딸은 둘이나 있으니까 딸한테는 무조건 친구같은 아빠가 될꺼다. 나를 막 무시해도 괜찮다.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줄꺼라고 믿는다. " 

남편은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선생님들의 말씀은 철썩같이 따르는 모범생인 큰 딸은 담임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서는, 그 날부터 우리들에게 높임말을 사용했다. 나는 그것이 흡족하고 좋았는데 남편은 펄쩍 뛰며,

"제발, 저 높임말 좀 안 쓰게 해주면 안 돼?나는 너무 싫어. 저러니까 내 딸이 내 딸같지가 않고 남같애. 니가 높임말 좀 쓰지마라고 좋게 얘기 좀 해 주면 안되나?" 했다.

나는 나에게는 꽤나 보수적이라 생각했던 남편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은근히, 그래. 딸은 모르겠지만 아들들이 엄마한테 높임말을 하는 게, 나는 좋아보였었다. 왠지 아들이 존댓말을 쓰면 엄마를 존중하고 귀이 여기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보였는데, 아빠는 딸들에게 이런 느낌은 별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큰 딸에게는 남편의 이런 친구같은 아빠라는 작은 로망과 합이 잘 맞아 들어간 것인지 딸에게는 아빠의 진심이 통한 거 같다. 친구같은 아빠가 목표였다면 당신은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춘기 승질머리가 정점을 찍던 4, 5년 전만해도 큰 딸의 이런 대화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큰 딸이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치던 그 혹독한 사춘기 시절을 견디어냈다. ㅋ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편과 결혼을 준비할 때, 남편의 아버지, 내 시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이 사람과의 결혼하기로 한 마음굳혀졌다. 물론, 결혼의 당사자인 남편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남편의 아버지를 만나고나니, 이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한 다짐이 참 잘한 것이라 확신을 했다.

 내 시아버님은 당신이 14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날에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서 아버지의 제삿날이 막내 여동생의 생일날이 되었다. 내 시아버님은 딱 14살이 되던 겨울 대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홀어머니와 아래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셋이 14살의 우리 시아버님을 아버지로 여기의지하살아왔다.


그런 시아버님의 가부장적인 아우라는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보아온 것이었다. 저녁 한 끼를 먹는 데 온 가족이 시아버님의 식사 모습을 살피고 행여 수저라도 엇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하고 물이라도 찾으시면 온 가족이 다같이 벌떡 일어나는, 그 카리스마가 말도 안되게 낯설으면서도 나는 이상하게도 좋았다. (결혼 전의 우리집은 가장 맛있는 것은 우리집 가장 막내인 내 입에 먼저 넣어주는 그런 집이었다.)

처음으로 보는 가부장적인, 머지 않은 날의 내 시댁이 될 집안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나는 하나도 답답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사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시집살이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런 시아버님의 카리스마가 든든하고 오히려  인생의 안전한 버팀목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살면서 우리 아빠에게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바위처럼 단단한 신뢰감. 그 단단한 신뢰의 울타리 안으로 내가 들어간다면 나도 평생을 든든한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남편의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였다.


서로가 결핍속에서 서로의 만족을 찾는 것이라면 우리는 환상의 아버지와 아빠를 서로 공유했다.

남편은 내 아빠에게서 자유와 공감의 따스함을 얻었고 나는 남편의 아버지에게서 든든하고 안정적인 신뢰감을 얻었다. 

이러한 만족감에서 얻어지는 것이 화목의 비결이라면 그 화목의 비결이 아빠라는 너의 주장을 인정하겠다. 나에게는 가끔씩 아쉬운 남편이지만 딸들에게는 적당히 친구같고 적당히 든든한 아빠의 존재감으로 인해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진다니 말이다.



19세 딸아이의 취중진담에서처럼 아빠가 가정의 화목의 비결이라면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여, 힘을 내자.

또, 나처럼 전적으로 가정의 모든 시작은 나, 엄마로부터 온다고 믿고 있는 모든 엄마들도 일어나서 행복의 지분을 사수하자.

더 분발하겠어.

아빠가 서머스비로 힘을 얻었다면 엄마는 맛난 안주를 공략해야겠군. 

아직도 서머스비가 4캔이나 남았으니 네 마음이 어디로 흘러갈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빼빼로데이 호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