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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Jun 08. 2023

무제

벌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엄지손톱 반절만한 벌레가 휘익 날아온다.

어어억, 하고 뒤걸음질친다.

저걸 잡아야 되는데, 저걸 잡아야 되는데, 무섭다.

마침 재활용쓰레기 아래에 에프킬라가 보인다.

무섭지만 마구 뿌려서 하얀 분사물에 벌레를 가두었다. 그리곤 남편에게 뛰어갔다.


"벌레, 벌레 저거 좀 잡아줘." 하고 눈물이 난다.

휴지를 들고 가는 남편 등어리를 바라본다.

"바퀴벌레가?" 바퀴벌레면 또 나타날텐데, 겁이 난다.

"아니, 딱정벌레다." 남편이 안심시킨다.


벌레 한 마리가 겁이 나서 잡지를 못하는 내가

나를 어떻게 잡겠노... 하며 또 눈물이 난다.

내 걱정말고 내일 출근해라.

벌레를 잡아준 남편에게 나는 괜찮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내가 니없이 이제 어떻게 살아가냐고

눈을 딱 감았다뜨면 어디론가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더니

이 쫄보 겁쟁이는 벌레 한마리도 어찌하지를 못 하는 나약한 사람이다.

벌레가 나를 또 살아라하는 것 같다.

언니 니가 보내줬니?

니는 또 얼마나 무서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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