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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원 Nov 26. 2023

무서운 딸

관계: 엄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랑 여행 가는데 네 차 A 좀 빌려줘.”      


매번 친구들 차를 얻어 타고 여행 다녔는데     

눈치가 보여 이번엔 엄마가 차를 가져가야겠다며     

엄마 차는 2인용으로 친구분들을 다 태울 수 없으니     

나의 차를 빌려달라고 하셨다.

                   

내가 휴직 중이라 차 한 대가 놀고 있으니     

아들 학원 자가 등·하원 요일만 피하면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지만 뭔가 싫었다.

                    

A는 남편이 출퇴근에 사용하고 있고     

나는 다른 차를 사용하고 있는데     

굳이 A를 콕 집어 빌려달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A 차야? 그건 요즘 남편이 타고 있는데.”     

“A가 운전하기 편할 거 같아.”     

“A는 작아서 장거리 여행하면 뒷자리가 아주 불편할 거야.”     

“상관없어. 내가 뒷자리 앉는 게 아니니까.”     


자기는 운전자라 뒷자리가 편하든 불편하든     

상관없다며 꼭 A를 빌려달라는 엄마의 말이     

참으로 엄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렌트를 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냐고     

내가 렌트비를 주겠다고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극구 말리는 통에 속으로 삼켰다.

        

내가 미혼도 아니고     

내 차가 나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음에도 빌려달라고 하는 엄마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사고가 났을 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의 귀찮음과     

나에게 미칠 손해까지 상상해서 엄마가 미웠다.

                    

내가 엄마와 같은 상황이라면     

자식에게 빌려달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의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로     

왜 이렇게 화를 내고 분해하냐고 했다.         


남편을 보면 항상 신기했다.     

나는 귀찮아하는 부모님 관련 일을     

남편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했다.       


예를 들어 폰을 바꿔드리고      

각종 어플들을 다시 깔아 드린다거나     

인터넷으로 뭘 알아봐 달라고 하시면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는 그런 종류의 일들 말이다.

                   

나는 엄마가 종종 부탁하면     

아주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면서 겨우 하거나     

아예 바쁘다거나 모른다고 해버린다.

                    

내가 아주 못 돼먹은 딸인 것 같은데     

이건 우리의 관계에 그 해답이 있다.     


나의 엄마는 일반적이지 않다.     


흔히 엄마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희생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1을 주면 1을 돌려받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시고    그 1을 돌려받지 못하면 많이 서운해하신다.  


                          

무서운 엄마


어릴 때 엄마가 아주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양육 태도는

일관성이 없어서 언제 화를 낼지 알 수가 없었다.     


혼이 날 거 같아 잔뜩 주눅 들어있는데     

마침 엄마 기분이 좋으면 운수 좋은 날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기분이 안 좋으면 그날은 운수 나쁜 날이다.     


항상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살얼음판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내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로     

된통 깨지기 일쑤였기에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맏딸이라고      

틈만 나면 신세타령과 하소연을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다.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가되어     

내 나이에 가지지 않아도 되는 걱정과 근심을 하며     

불안함 속에서 지내야 했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때에도     

엄마가 무서워서 그 흔한 반항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 대신 온갖 책을 무진장 읽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현실도피였다.  

                  

책에 몰두하면     

무서운 엄마도, 나를 둘러싼 불안한 현실도     

모두 잊히게 되는 완벽한 도피.     


나의 현실도피 시절이 끝나고     

엄마와 분리되었다.    

           

숨통이 조금 트이게 된 것이다.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고 나니     

엄마에 대한 무서움은 사라지고

그곳에 미움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미움은 지금도

더하면 더해졌지, 덜하지 않은 상태로

내 안에 남아 있다.   

                 


무서운 딸


나는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니다.     

엄마의 호통 한마디에 벌벌 떨며,

엄마를 필요로 했던 나는 이제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난 엄마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화를 묵묵히 받아줄 필요도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할 이유도 사라졌다.      


화를 내면 더 큰 화로 대응했고,

감정을 쏟아내면 아예 귀를 막았다.     

그전에도 호응은 안 했지만

이젠 아예 듣기조차 안 했다.     


처음엔 바르르 화를 내시며     

엄마와 딸의 인연을 끊자 큰소리치셨다.     

실제 그렇게 몇 년을 만나지 않은 적도 몇 번 있었다.      


난 그다지 아쉬울 게 없었다.     

엄마 없이 지내는 삶은 더 평온하기까지 했다.     


항상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엄마였다.     

엄마의 손을 쳐내지 않은 것은     

엄마에 대한 내 작은 예우였다.      


엄마는 이제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이제 화를 내는 사람은 나 혼자이다.      


나는 매번 사소한 일로      

엄마에게 버럭 화내고 분풀이를 한다.      


‘나는 이제 네가 무섭다. 호호호’     


과거 나의 화에 더 큰 화로 대응하던 엄마는     

현재 뻘쭘한 웃음으로 대처한다.     


옛날에 대한 복수일까?     

복수하면 속이 시원해져야 하는데     

더 답답해진다.   

                 

엄마에게 화를 낸 날에는     

집에 와서 왜 화냈지 되돌아보고,     

그렇게까지 화낼 건 아니었는데 후회하고,     

나의 화에 당황해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미안해한다.     


하지만 나의 반성은

엄마를 마주하면 다시 리셋이 된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니     

엄마는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진심으로 사과를 받고 싶어

과거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의 기억은 나의 것과 다르거나     

그런 기억 자체가 아예 없거나였다.


갑자기 신채호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를 잊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앞으로의 그 어떠한 것도 장담할 수가 없겠다.

               

정말 나의 엄마답다.          

엄마가 나의 엄마다운 한     

나는 엄마에게 언제나 무서운 딸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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