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동료
어쩌다 보니 학교에서 항상 막내였다.
최근에 근무했던 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라
특히 50대 이상의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제일 어렸다.
초반엔 굉장히 조용히 학교 생활을 했다.
그러다 첫 부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엄청 많은 업무를 담당했다.
같은 부서의 부서원으로는
5개월 기한의 대학을 갓 졸업한
따끈따끈한 새내기 선생님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보연구부장으로
정보(각종 기기나 보안 관련), 평가,
방과후, 융합수업을
주요 업무로 배정받았다.
그리고 부장을 맡은 첫 해에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로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웠고,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 했는데
정보부의 일이었다.
첫 부장에 코로나라니!
학기 초는 원래도
다른 업무들로
아주 바쁜 시기이다.
그런데 코로나까지 덮쳐
각종 연수를 들으러 다니며
학교 온라인 기반 사이트를 구축하고
선생님들께 전달 연수를 하느라
정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1.
“선생님, 할 말 하는 거 같아서 부러워요.”
어느 날, 비슷한 또래의 친한 선생님이
교무회의를 마치고 말했다.
2.
방과후 시작 전 계획을 학교 밴드에 공유를 했다.
그 게시물에 한 학부모의 댓글이 달렸다.
작년 방과후 운영에 대한 민원이었다.
작년 담당자는 이미 학교를 떠났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민원을 받으니 억울했다.
그리고 보통 게시물은 안내용으로
댓글이 달린 적이 없었다.
이런 민원은 직접 전화를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공개된 게시물에
댓글로 민원을 제기하시니
마치 나에 대한 비난으로 느껴졌다.
또 근무 시간이 훨씬 지난 저녁시간에
댓글 알림이 떠서 솔직히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도 답글을 달았다.
몇 번의 날 선 댓글들을 주고받고는
교무부장님의 중재 전화를 받고 멈췄다.
3.
교감선생님이
오늘까지 기한인 교육청 보고 공문을
얼른 올리라고 연락이 오셨다.
파워 J인 나는 공문이 오면 처리 기한을
달력에 모두 표시해 놓고
기한 전에 다 처리하는 편이다.
달력을 아무리 봐도
교감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공문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공문 접수 번호를 전달받고 확인하니
몇 달 전 다른 부서 공문이 나에게 지정되어
다른 구성원들의 편의를 위해
담당 선생님을 공람해서 그냥 접수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그 업무 담당자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누가 봐도 나의 업무가 아니었다.
오직 공문을 접수 처리한 죄로
내가 해야 된다고 하셨다.
사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하려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원래 담당 선생님이
일을 잘 미루었던 분이었고,
(그래서 대신해 주기 싫었다.)
나는 정말 업무 폭탄이었기에
갑자기 억울한 기분에 휩 싸옇다.
“교감선생님, 제가 접수하긴 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학생부 공문인데
진심으로 제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
원래 절차가 그렇다 이야기하셨지만
나의 단호한 물음에
결국 공문은 원래 담당자가 처리하였다.
완전 MZ
학교에서 어렸기에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아주 젊은이로 여겨주셨는데,
흔히 MZ 세대 특성이라 여기는 것들의
종합이 나였다.
그리고 저 에피소드들만 보면
나는 할 말은 다하고
자기 업무의 경계선이 분명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MZ세대 임이 틀림없다.
처음 MZ 세대 용어가 나왔을 때
나랑은 상관없는 젊은이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나이가
MZ 끝자락에 걸쳐져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MZ 세대가 맞았다.
하지만
저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1.
미래학교로 지정되어 매일 회의였다.
오죽하면 주변 학교에서
회의 지옥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미래학교를 주도했던 교무부장님이
분명 원하는 바가 있지만
선생님들의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그림을 원하셨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생각은 다양했고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면
회의는 원점이 되는 것이었다.
수업에, 업무에 바빠서 죽을 거 같은데
회의는 한 시간, 두 시간..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고 계속 겉돌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메었다.
"부장님, 원하시는 바를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회의 시간이 단축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먼저 말씀을 해주세요."
너무 답답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한참 후배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 없는 것이 아닌지
기분이 나쁘셨을지 몇 날 며칠을 걱정했다.
2.
밴드에 댓글들을 주고받으며
나는 정말 엉엉 울었다.
그때 방과후 업무를 처음 맡았고
전임자는 학교를 떠나서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혼자 매뉴얼과 작년 공문을 보며
겨우 겨우 일을 처리하 던 중이었다.
처음 맡은 부장 직책과 새 업무가 버거워
매일 저녁 집에서 내일 학교 가기 싫다고
눈물 바람이었는데 하필 그런 일이 생긴 거다.
순간의 억울함과 학부모님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고 싶어 댓글을 달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의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하였다.
3.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너무 내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나,
교감선생님께
예의 없이 군것은 아닌가 마음이 쓰였다.
며칠 동안 교감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가서 죄송했다 사죄를 드릴까 전전긍긍하였다.
내가 완벽한 MZ 세대라면
나의 행동에 후회나 걱정을 안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애초에 저 많은 업무를 다 맡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제일 어렸고 선배 교사에 대한 예우로
업무를 많이 하는 것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끝자락 MZ
나는 MZ세대지만
끄트머리에 겨우 걸쳐진 MZ였다.
진짜 MZ세대인
대학 갓 졸업한 새내기 선생님을
보면서 확실히 느꼈다.
새내기 선생님은
육아휴직 중인 선생님을 대신하여
5개월 기한으로 오셨는데
임용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없을 때
에어팟을 끼고 공부를 했다.
부장으로 부원에게
업무를 맡기고 싶었지만
그 에어팟을 뚫고
말을 걸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 번은
학생들의 확인 사인을
받아야 하는 서류가 있었는데
새내기 선생님이 한 장을 누락했었다.
다른 50대 선생님도 똑같은 상황이라
학생들에게 사인을
받으러 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새내기 선생님이 말했다.
"가시는 길에 제 것도 좀 받아다 주세요."
완전 띠용이었다.
예의 없음이라 생각되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계속 함께 근무할 상황이었다면
언젠가는 이야기했을 것 같다.
진정한 MZ라면
내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았을 듯한데
이런 행동들에 묘함을 느끼며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하는
나에게서 꼰대의 스멜이 느껴졌다.
조직 속에서
부당함과 억울함을 억누르고 잘못된 관행에
순종하는 옛 세대도 아니지만
예의 중시, 윗사람에 대한 존중
이런 가치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이때까지는
나이 드신 분들과 주로 근무했기에
동료들에게 나는 끝자락 MZ였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자기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의 역영에 대한 경계가 확실한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젊은 동료.
내가 속으로 얼마나 많이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는지 알지 못하니
굉장히 쿨해 보인다고도 하셨다.
하지만
만약 앞자락 MZ세대를 만난다면
젊은 꼰대로 정의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