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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원 Nov 05. 2023

두근두근 아내

관계: 남편

이제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4개월 남짓...

이제 더 이상 늦출 수도 없다.

     ...... 복직 준비......


요즘 사실 죽을 맛이다.

나 스스로 복직 준비 시작을  

11월부터라고 정해두었는데

그날이 다가올수록 무기력해진다.


출근할 때

일요일 오후만 되면 답답해지고 우울해졌었는데

지금 나의 마음이 딱 그때와 같다.


이런 마음은 10월이 시작되며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편은 이런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완전 T다.

 ‘아직 4개월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러는 거야?!’


하지만 요즘 내 얼굴에

한 껏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려준 이도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내 표정, 말투, 몸짓에 담긴 의미와

심지어 머릿속에서 혼자 한 생각까지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함께 한지 내년이면 20년이다.

여자 친구로 10년, 아내로 10년.

내 삶의 1/2을 이상을 함께 했다.


우리가 천년의 운명이라

남편이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듯 긴 세월을 함께 보내며

터득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생존 기술이랄까?



보완재 남편


나에게 있어 남편은 보완재이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경제학 용어로써의 보완재,

즉 따로 소비했을 때 보다 함께 소비함으로써

그 효용이 증가하는 재화라는 의미가 강하다.


나 혼자였을 때 보다 남편과 함께 하는 지금

나의 효용이 증가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반면 남편은 이성적이며 안정적인 사람이다.


남편과 함께 함으로써

감정적이고 불안감이 높은 성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 치솟을 때 진정 시켜주며

높은 불안으로 힘들어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안정시켜 준다.


이런 경우가 수없이 반복되다 보니

나 스스로도 감정의 널뜀과 불안을

어느 정도 내면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날카롭고 예민했던 사람이

한결 유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인다.

나의 속 마음은 여전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사람들은 나의 보여지는 모습만을 보며

그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니

옛날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다른 이에게 효용이 높아진 것이다.


이는 우리 엄마가 증명해 주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결혼하니 네가 한결 편안하고 부드러워졌다.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어.’

남편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나에게 남편이 보완재라면

남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남편에게 물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바로 말해봐.”

 “......”


남편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굉장히 어려운 숙제를 받은 것 마냥

시간을 좀 달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겠노라고 하고는

답을 듣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리는 주말부부라 매일 아침 통화를 하는데

남편이 오늘 아침에

이제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가 엄청 고민하고, 생각해 봤다며.      



 두근두근 아내


나는 남편에게 두근두근 한 존재라고 했다.

이 얼마나 뻔하지만 로맨틱한 대답인가!

그러나 뒤이어진 설명은 로맨틱하지 만은 않았다.


나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의미로 두근 두근하다고 했다.


내가 혹시 무슨 사고(?)를 칠까 두근두근

평일에 아이와 둘만 있으니 걱정이 되어 두근두근

자기를 부르면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 두근두근


아.. 물론

나를 사랑해서 두근두근 한다고도 하기는 했다.


남편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요즘 내가 관계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음을 알기에

소재를 제공해 주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였을 남편이 귀엽기도 했다.


두근두근 아내를 답해주고 뿌듯해하던

그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해 준 이가 남편이었다.


요즘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친다.

그럴 때마다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다.


나의 “보완재” 남편에게 “두근두근” 아내로서

앞으로 무엇으로 더 두근 두근하게 해줄지

고민해 봐야겠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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