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남동생
한 달 만에 연락을 했다.
연일 매체에서 마약으로 소란스러울 때
하필 떠오르는 이가 남동생이었다.
남동생은 나보다 10살 어리다.
친구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하는
20대 혈기왕성한 남자 사람.
그래서 혹시나 걱정이 되었다.
호기심에 덜컥 접하지는 않을지
친구들과 놀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중독이 되어 버릴까 염려되는 마음에
앞뒤 설명도 없이 마약은 안된다며 톡을 날렸다.
안 한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더 이상 용건이 없어
마지막 대꾸도 하지 않고 끝난 우리의 대화.
남동생과 나의 관계는 통상적인 혈육 관계이다.
성별 다른 혈육이 그렇듯
용건이 있을 시에 연락하고,
없으면 잘 살아있겠지 싶은
딱히 궁금할 것도 없는 사이.
우리의 카톡을 보면
자기 할 말만 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남동생은 요즘 수영과 프리다이빙에 빠져있어
수영복을 새로 장만하거나
프리다이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
뜬금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보낸다.
거기에 나는 아무 감흥도 없이
'오, 멋지네.'
정도의 답을 하거나 아예 안 하거나.
우리는 교집합이 거의 없다.
같은 나이대와 성별이 가지는 공감대도
그렇다고 많은 일을 함께 겪으며
쌓아온 추억도 없다.
남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난 대학생이었고,
고등학생 일 때는 한참 임용준비로 바빴다.
그리고 군대 갔을 때 결혼을 했다.
그러니 무언가를 함께 하고
추억을 쌓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교집합이라면
같은 성씨 그리고 큰 키 정도.
그냥 큰 누나
“나는 너에게 어떤 누나야?”
남동생의 대답은 심플했다.
하지만 저 이모티콘처럼 묘하게 킹 받는 건 왜일까?
아들의 중간엄마 답을 들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사실 조금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듬직한 누나라던지
존재가 힘이 되는 누나라던지
애정을 기반으로 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나 보다.
나는 남동생에게 미안한 맘이 있다.
대학원 졸업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과외와 입시 지도를 오랫동안 했는데
정작 내 동생의 학업과 입시는 무관심했다.
내가 시킨다고 할 아이가 아님을 알고
일찌감치 신경을 껐던 것도 있고,
내 앞가림하기만으로도 벅찼던 것도 있다.
부모님 대신 입시 상담을 가기도 했었는데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던 걸까?
뿐만 아니라 10살이나 많은 어른으로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미안함 투성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또 부채의식이 엄청 큰 것은 아니다.
나는 부모가 아니라 누나였으며,
성인이긴 해도 아직 무엇하나 완벽히
이루어놓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였기에
동생을 온전히 책임 질 의무도
그럴만한 여력도 없었다.
불안한 동생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지만
남동생이 우리 가족들 중에서
가장 결핍이 많아 보인다.
바쁜 아빠와 엄마의 부재.
무관심한 큰 누나와 작은 누나.
가족 중 누구 하나 마음 붙일 곳이 없는,
그래서 친구에 죽고 친구에 사는 아이.
남동생을 생각하면 항상 불안하다.
혹시 나쁜 생각을 하진 않을까?
혹시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불안정한 내 남동생.
이미 오랜 시간 이렇게 지내왔기에
이제 와서 가족 간의 돈독한 애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아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응원할 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동생이 생각하는 나의 정의에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애정이 내포되어 있음이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구구절절 설명하고 표현하는 사이가 아니다.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행복과 평온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티 내지 않는다.
내 동생도 나도 그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
처음으로 용기 내어 표현해 본다.
동생아!
나는 너를 엄청 염려한다.
누구보다 너의 행복을 염원한다.
그리고 온전한 너의 편으로
너의 모든 것을 지지한다.
ㅅ..ㅅ…ㅏ..사…
고는 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