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아들
“엄마는 어떤 엄마야? 좋은 엄마야?”
“음... 중간??”
나는 중간 엄마다.
좋은 대답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 관계가 그랬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간.
아들이 1학년이 되기만 기다렸다.
아이의 돌봄을 이유로
암묵적으로 일을 쉴 수 있는
내 마지막 남은 휴직 기간.
기다리던 그 기간이 바로 올해이다.
휴직이 시작되기 전에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그동안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다 갚아주겠노라!
<휴직 중 해야 할 일>
첫째,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이기.
둘째, 아이와 온전히 시간 보내기.
셋째, 비성수기에 여행 다니기.
넷째, 아이와 함께 많은 경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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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휴직을 기대하며 세웠던
나의 모든 계획은 아무것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딱 중간.
중간 엄마답게
내가 세웠던 계획의 실행도는 중간이다.
요리는 확신이 없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거의 요리를 안 하다시피 살아왔기 때문에
요리를 하기 위해선 기본양념들부터 사야 하는데
이걸 다 새롭게 장만하자니 ‘내가 진짜 요리를 꾸준히 할 수 있을까?’에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확신을 가지는 것을 미루다 보니
벌써 10월이니 이건 반포기 상태이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중간 엄마답게 적당히 반찬을 사기도 하고,
간단한 카레나 김밥은 주 1회 정도 만들기도 하고,
시중의 밀키트를 활용하기도 해서 밥을 먹였다.
거창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중간 수준의 식사.
휴직을 하면 평일에 아이와 엄청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교육을 시키다 보니 정말 시간이 나지 않았다.
하교 후 간단한 간식을 먹다 보면
학원 갈 시간이었고, 2시간가량 학원을 다녀와서 씻고, 밥 먹고, 숙제를 하고 나면 밤이었다.
평일에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을 다니고,
여유롭게 놀기도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없을 줄이야!
그렇다고 사교육을 엄청 많이 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딱 중간 정도?!
그래도 손을 잡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
학원 차를 타러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휴직 전보다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긴 하다.
아이를 낳은 후 나의 삶은 아들 중심으로 흘러간다.
내 시간, 관심, 행복, 슬픔, 기쁨, 짜증, 분노...
이 모든 것들의 주인은 나의 아들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그 아이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아주 심오하고도 철학적인
일임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이 세상에 제대로 살게 하기 위해
순간순간을 나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지금 나의 작은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아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에
매일 자기 검열에 열을 올린다.
참 피곤한 삶이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우울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래서 워킹맘으로서 아들에게 미안함 투성이었다.
나는 내가 일만 안 하면 정말 육아를 끝내주게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을 안 하는 현재,
아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중간 엄마
사실 그 평가를 듣고 처음엔 황당했고,
다음으로 화가 났으며 뒤이어 우울했다.
내가 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겨우 중간이라니.
아들의 박한 평가에 당황했고,
나의 노력을 평가절하 당한 것 같아 화가 났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사실 아닌 걸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나에게 노력을 요하지 않았기에
우울했다.
그래 누구도 나에게 노력하라고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내가 부족하다 생각하고 자책했고,
더 잘하라고 채찍질을 했기에
나의 화와 우울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과연 ‘좋은 엄마’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가 보기엔 ‘저 정도가?’ 하는 것이
누구에겐 ‘저 정도나!’ 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수준이 아주 높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정의한 좋은 엄마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중간 정도만 하자!‘
지금도 난 중간 엄마니까
아주 잘하고 있다고 나 스스로 자위한다.
덜 피곤한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