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완벽함이 아닌, 서로의 '결핍'을 이해할 때 완성된다.
사람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일까?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장소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하지만 스스로 가장 다름을 느끼는 환경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렇다.
처음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척을 한다. 조금은 건실한 청년으로, 비전 있는 사람으로,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또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좋아하는 척 먹는다. 그저 같이 있는 게 전부인, 다른 건 중요하지 않은 그런 사람. 더 나아가 이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준비까지 되어 있다. 마치 당신이 지금껏 만나왔던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라고 증명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노력이 잠시는 가능해도 평생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사람 쉽게 안 변해” 살면서 참 많이 듣는 말 아닌가? 그렇다. 이미 많은 경험으로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과 나의 모습의 괴리,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척을 계속할 순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노력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다만 ‘쉽게’변하지 않을 뿐.
그렇다면 ‘척’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인가? 그렇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최고의 미덕은 솔직함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척’은 나 자신도 속이고 상대방도 속인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서로 “변했다”라는 말로 상처를 주거나 다투기 시작한다. 그저 애쓰기 전, 가장 편안한 내 모습으로 돌아간 것뿐인데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잘 맞았다고 생각한 관계 어느새 맞지 않는 관계로 변해버린다. 갈수록 스트레스만 쌓인다. 실망하고 서운하고 다투고, 변했다며 서로 물어뜯기 바빠진다. 결국 사랑하는 관계에서 척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연애 길게 보면 결혼은 결국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뢰와 믿음은 서로의 모든 것을 드러낼 때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모습이라도 과감하게 꺼내어 보여주는 것.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취향을 가졌는데 우리 괜찮을까?’라고 묻는 솔직함. 진짜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척”에 반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이해할 때 완성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