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묻지 않는 사람들

효율만 추구하는 시대

by 안다니

“최근에 끝까지 읽은 긴 글이 있나요?”

“10초 앞으로 넘기지 않고 끝까지 본 영상이 있나요?”



솔직히 말해 나 역시 긴 글을 읽는 게 버겁다. 스크롤을 몇 번이나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활자들은, 조금만 집중력을 놓으면 금세 눈을 피해 도망다닌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지루한 장면이 나오면 습관적으로 화면 오른쪽을 두 번 터치해 10초를 건너뛴다.


시간에 쫓겨 살다보니 우리는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과정의 즐거움 보다는 결말의 확인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요점만 말해”,“글이나 영상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맥락을 파악하려는 인내심은 비효울이라는 이름 아래 삭제되고 있다.


화면 속 세상은 더욱 노골적이다. 유튜브를 켜면 '결말 포함','10분 순삭', 등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이 쏟아진다. 창작자가 수개월, 수년 동안 공들여 만든 영화나 드라마가 단 몇 분만에 요약되어 전시된다. 우리는 요약본을 보며 내용을 다 파악했다고 믿는다. 감독의 연출 의도나 배우의 미세한 표정 연기 같은 맥락은 가위질 당한 채, 줄거리라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는데도 말이다.


지식을 얻는 과정 또한 가벼워졌다. 과거에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두꺼운 책을 펼치고,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을 곱씹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복잡한 인문학이나 과학 지식조차 몇 분만에 정리해드립니다. 라는 영상 하나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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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영상들이 흥미를 유발하고 진입 장벽을 낮춰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영상을 다 보고 난 뒤, 마치 그 지식을 온전히 흡수한 듯한 충만감에 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냉정히 말하자면 그건 지식이 아니라 껍데기를 핥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는 척하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깊이 있게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진실과 감동은 ‘세 줄 요약’이 아니라, 생략된 ‘맥락’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녀가 사랑하다 죽음”이라고 요약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비극적 사랑이 왜 아름다운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결과만 쏙 빼먹는 효율적인 삶은 편리할지는 몰라도, 결코 깊어질 수는 없다.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일이다. 지루함을 참고 긴 글의 행간을 읽어내고, 답답함을 견디며 영상의 흐름을 따라갈 때 비로소 나의 관점이 생긴다.


그러니 가끔은 좀 비효율적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빨리 감기 버튼에서 손을 떼고, 결론을 재촉하는 마음을 잠시 멈춰보자. 스쳐 지나가는 요약본이 아니라, 온전한 과정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세상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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