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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호 Jul 03. 2024

필사(筆寫)

느낌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프리드리히 니체 <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필사(筆寫) /  김순호  

 


     나는  겨울엔  장편 소설 읽기에  도전하곤 하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읽을 때뿐, 

기억력이  떨어져  요즘은  읽었던 책을 손으로 읽는  필사를 한다.   이것 역시  눈에  

무리를 줘 욕심대로 속도를 낼 순 없지만  이런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할 땐 책상에 앉

아 한 장 한 장  쓰다 보면 어느새  작품에 몰입돼  가니,  내겐  적확한  처방 같다. 

다가 밑줄 쳐  놓은 것을 다시  읽을  때와는 다르게   작가의 깊은 사유를  통째로  빨

아들이는 기분이라니. 

 

      처음 시작은  지속되는  무력감으로  책이 읽히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아 도피 

도구로 선택했다.  물론 필사도 고급  몰스킨(MoleSkine) 이나,  격조 높은 만년필에

맞는 질감의 노트를  이용해, 출판된 책과 거의 똑같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분

들도  계시지만, 나는  자신도  알아보기 힘든 멋대로 필체라  그 작업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작정을 하고 볼펜과 노트를 사 들고 온날,  " 못하면 말지"

 "완성할 테니 두고 봐"의 두 오기를  직면하며 작업실에  틀어 박혔다. 밑줄  가득한 발

터 벤야민 <일방통행로>를 펼쳤다. 책장을 넘겨가며  삐뚤빼뚤  볼펜 눈물 같은  글자를

따라가는 시간이 계속되자  차츰 평정을 찾아가는  나를 본다. 

    (물론 손목이 아픈 과정도 있었지만)  몇 자루의  볼펜 잉크가 바닥나고, 마지막 페이

지를  노트에  옮겨 적을  땐,  마치 내가 책의  저자가 되어  퇴고라도 하는 듯 후련했다. 


    첫 번째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도서출판 길-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옮김)에 이

어 진행 중인  프리드리히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장희창 옮김 )

는  아직  많이   남아있어  설렘이 보고에 가득 고여 있는 셈이다.   아마도 무덥고  습한 

올  여름엔 국지성 (局地成)  소나기  빗소리를 들으며 니체와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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