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포스터를 바라보며 / 김순호
작업실 벽엔
앉으면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포스터 한 장이 붙어 있다.
지난해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고 받아온 < Sun down >에서 '팀 로스'가
무의미한 일상을 탈출해 노을을 향해 앉아 있는 장면이다.
(포스터는 새로운 것으로 교체된다)
나는 지옥이 아닌 세상에서 악마를 보았다.
내 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절망'에 갇혀 저 주인공이 바라보는 '일몰'을 딱 저 자세로 앉아
몇 날 몇 밤을 새웠다. 배우는 연기로 일몰을 직시하고 있었지만 나는 영화 <sun down>에서 주인공이
바라본 저 포스터의 노을을 바라보며 나의 노을과 직면했다.
불면의 밤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창을 보며 달려가 문 두드리고 싶었다.
몇 주 동안 한 문장은커녕 컴퓨터조차 열지 못했다 오늘은 보이는 대로 쓰는 것으로 나를 일으킨다.
흐리고 바람 불고 한 차례 비 뿌린 날,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흐르는 카페엔 점멸등이 박자를 맞추고 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기웃거리던 낙엽이 손님을 따라 뛰어들어온다
문득문득
행여 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렵다는 핑계로 삶을 잡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에 나오는
"운명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되뇌며 비굴하게 합리화 한다
추위 속에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여자를 바라보며
내 안에 출렁이는 내장을 저렇게 태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절망을 견디려면 감정의 근육이 단단해지도록 더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해야 하리라
그것이 단독이 누리는 자유의 대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