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자살 사건> 중에서
암탉은 말한다 / 최승호
최승호 시인의 < 눈사람 자살 사건 >에 수록된 ' 글' 중
" 암탉은 말한다 "를 읽고 나는 한동안 먹먹히 앉아 있었다.
어떤 이는 이 글에서 배신을 느끼고
어떤 이는 이 글에서 사랑을 느끼겠지만
모두 사랑의 단상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
깊이 감동하리라 생각된다.
세상에 모든 것은 다 변하기에 불같은 사랑도,
영원할 것 같았던 믿음도, 시간이 가면 퇴색한다.
그러나 추억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제 함께한 사랑을 배신이라 하지 말기를~
(글 전문을 옮겨본다)
*************************************************
암탉은 말한다 / 최승호
그 쥐새끼가 그렇게 교활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지나친
호의를 경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유감일 따름
입니다. 처음에 쥐는 내 아름다운 가슴을 한번 만져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러라고 했죠. 쥐수염 난 주둥이로 가
슴을 문지르는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 다음에 쥐는
내 가슴털을 헤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었답니다. 정말
시원했어요. 흙 목욕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 다음에 쥐가 나를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가슴을 긁
어주는 줄 알았는데 가슴살을 솔솔 쏠아 먹고 있었던
겁니다. 살뿐만 아니라 내장까지 쏠아 먹고 있었 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황홀했죠. 즐거운 밤이 지나 새벽에 눈을
떠보니 가슴은 뜯겨 있고 내장들이 흘러나와 흙투성이
가 되었더군요. 창자를 질질 끌고 와서 이렇게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어리석고 불
쌍한 나를 흙구덩이에 좀 묻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