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김순호 글

연습실을 오가며

느낌

by 김순호




연습실을 오가며 / 김순호




우연히 성인 피아노 학원을 발견하고 나는 일주일에 3, 4, 번 매회 약 2시간씩 외부와 차단된 밀실에

가물거리는 선율을 캐내고 있다.

(성인 피아노 학원의 선택사양을 나열하는 건 광고가 될 수 있기에 접는다.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나는 배경음악으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자주 듣는데 언제부턴가 연주 사이에 ○피아노 광고가 자꾸 끼어들었다. 그냥 넘겨버리고 지내다 몇 개월 만에 클릭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20년 전 피아노를 배우다가 멈춘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늦게 배운 탓에 암보도 되지 않아 악보 없인 한곡도 칠 수 없는 나는

레슨을 중단하자 점차 피아노와 멀어졌다. 간혹 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한 번씩 내 맘대로 띵땅거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검색 후 이것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 와서 재주도 없는 피아노를 하겠다고 기한 없이을 투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레슨 받은'곡' 들을 다시 한번 제대로 쳐보는 건 괜찮지 않은가?

여기에 한술 더 떠 지금 안 하면 영영 끝이란 생각이 사라지질 않아 서둘러 찾아가 상담을 하고 등록을 했다.

집에서는 이런저런 제약이 많지만 모든 성인을 타깃으로 한 연습실은 '연중무휴 명절포함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시간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니 머릿속이 환호로 들끓었다.


갑자기 마음도 발길도 바빠진다. 그곳에선 몇 만장의 악보를 뽑아쓸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했지만 그건 처음 접할 '곡'일 때의 얘기고, 내경우는 복습에 맞춘 것이니 달랐다. 악보라는 게 자신이 배울 때 표시해 둔 것들이 눈에 익어 잘 보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레슨 때의 기억이 떠올려지기 때문에 내겐 낡아 너덜거리는 악보를 챙겨가야 하는 건 필수였다.


나는 새로운 곡에 도전하기보다 내 몸이 저장한 레퍼토리를 세심히 들춰보는 것으로 이번시도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연습실엔 나 외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늦은 밤까지 연습을 한다. 살면서 악기하나쯤 연주할 수있다는 것은 취미를 넘어 오로지 나만을 위로해 주는 변하지 않는 친구를 하나 갖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들은 벌써 알고 있는 셈이다. 그 열정의 틈에 끼어 두 달 남짓 연습실을 오가는데 의욕만큼 쉽진 않다. 결과가 어떻든 감사하게도 좋은 시설을 알았으니 모자란 부분은 그때그때 부담 없이 이용할 생각이다.


'감성과 재능'은 분명 다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좋아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짧지만 이 여정이 끝나면 시간을 투자한 만큼 나의 청감聽感은 더 깊어질 것을 믿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나를 멈추게 한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