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 삶의 단상
나는 실컷 울어는 봤지만 실컷 웃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어느 새벽잠에서 깨어 알았다.
문득 그런 내가 처연해 잠을 설쳤다.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나 스스로 자책하는 횡포에서 벗어나려면 결심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결심하는 것들이 있다.
남은 날들은 누구에게도 헌신하지 않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어떤 행운도 기대하지 않기
돈에 비굴해지지 않기
미래는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날들이므로 숨 쉴 수 있는 현재만 살아내기.
혼자 익숙해져야 한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자유롭다.
깨질 듯 청아한 겨울에 밟는 바싹 마른 낙엽소리는 애잔하게 심장을 찌른다.
눈 내리는 오후
따뜻한 찻잔을 감싸들고 눈의 방황을 좇는 일은 포근하다 그 순간을 깊이 저장한다.
1800년대에 살았을 톨스토이의 (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으며
지금도 변함없는 신분의 우열과 금지된 사랑과 인간의 내면을 상기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글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야스나야폴랴나'에 묘비도 없이 누워있다.
한밤 중 깨어있으면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폭풍 앞에 세워둔 느낌이다.
온몸의 물길이 달려오 듯 코끝이 맵고 싸하다.
부숴버려야 될 것 같은 답답함을 '단절'이라는 단어로는 쓰고 싶지 않다.
이 느낌은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몇 겹의 어둠에 맞는 단어를 이 밤엔 찾지 못한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검은 도시를 지키는 빌딩의 붉은 점멸등과 오래도록 눈 맞춤 한다.
나는 이별에 약하다
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준 처음 만난 승용차와의 이별이 그랬고, 20년 가족의 때꾹물을 벗겨준 드럼 세탁기와의 이별도 그랬다.
밤이 지나 새벽이 오면 기적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나를 그려본 날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의식도 없이 청춘은 사라졌다.
나는 시를 쓰지만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으려 한다. 다행히 시가 모아지면 출판하면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고 죽는다면 남아있는 시는 낙서로 흩어지면 될 일이다.
내 인생은 다른 무엇으로도 수정할 수 없이 이대로 끝날 것만 같다.
고양이는 묶이지 않고 어디든 간다.
살갑게 다가와 부비부비하다가도 떠나고 싶으면 뒤도보지 않고 떠난다.
그러나 개는 목줄이 늘어나는 걸 자유롭다 여기는 걸까?
스스로 다가와 묶인다. 주인이 멀어지면 기다린다. 떠나도 기다린다.
곁에 있는 것들은 다 순하다.
흔히 말하는 천국은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날만 지속된다고 한다.
추함이 없는 아름다움은 의미가 없다.
풍요 만발한 천국은 상상조차 지루한 형벌이다.
로뎅 조각작품 '지옥의 문'맨 위엔 저주받은 세 영혼이 가리키는 문구가 있다.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이 문장은 천국에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