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김순호 글

도둑맞은 작품

저작권에 대하여

by 김순호




도둑맞은 작품 / 김순호





하루를 마감하는 습관으로 펼쳐든 '문예지'에 내 작품이 제목과 행만 바꿔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 목격한 순간 한마디로 말문이 막혔다. 꼬박 그 밤을 새우고 날이 밝자 표절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는 것으로 외로운 싸움은 시작됐다. 그나마 상대가 같은 소속회원이기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고 또 순순히 표절을 인정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다고 이미 발간돼 독자의 손에 들어간 것이 없던 것으로 돌려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건을 법적으로 가져가느냐? 덮는 것으로 양보를 하느냐? 결정조차 쉽지 않았던 것은 재산상 손해는 몇 배의 값으로 환산하면 보상이 될 수도 있겠으나, 작품이 되기 전 언어와 글은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무엇을 포착해 관찰하고 긴 시간 숙성시킨 의미를 자신이 구상한 문장으로 배치해 표현한 고유한 창작은 어떤 형태의 보상도 불가능하기에 원작자에겐 치유될 수 없는 깊은 불신과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남의 노고를 훔쳐서라도 조명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음지에 숨어 무명작가의 작품을 골라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만일 유명한 윤동주, 서정주, 김수영, 님들의 작품이었다면 감히 표절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은 상식이다. 상대가 같은 울타리에 있는 문인이기도 했지만 그 일을 겪기 전엔 저작권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어디에 어떤 과정을 거쳐 문의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같은 동료문인들에게 문의해도 누구나 당하는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선뜻 함께하지 않았고 그 와중에 편집부 에선 은근히 덮어주기를 종용하는 눈치였다. 굳이 돈을 끼워 넣고 싶지 않지만 모지방 유지였던 표절자는 자신의 작품이 실린 책을 화려한 인맥을 이용해 홍보할 욕심으로 여러 권 구매할 수 있는 반면, 나는 작품을 발표한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사례로 보내주는 두 권을 받는 것으로 누구에게 보내는 일도 하지 않는 시인이다 보니 영업을 하는 출판사 입장에선 나보다는 당연히 구매자로서도 표절한 그쪽에 끌렸을 것이란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더 복잡한 것은 나로 인해 한 사람을 매장하는 게 옳은 일일까!라는 인간적인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지쳐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문제를 덮기로 했다.


표절의 분란은 몇 달 겨우 문제의 문예지에 사실을 알리는 약식 편집후기로 마무리 됐지만 과연 독자모두 그 작품이 표절이었고 원래의 작가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을까? 독자는 그렇다 쳐도 표절자가 자랑삼아 배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표절을 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집후기는 형식을 취한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을 뿐 ,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표절은 원 상태로 돌려질 수 없다.



우리나라 곳곳에 설치된 cctv로 우리가 일상의 안전을 제공받듯 지적 창작을 지켜주는 저작권은 위에 언급한 유명한 작가보다 나처럼 알려지지 않은 무명작가들에게 더 필요한 보호망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알려진 작가들은 독자들이 알아서 밝혀내지만, 무명작가들은 내경우처럼 자신의 작품을 운 좋게 발견해야만 알 수 있을 뿐, 사실 지금도 누군가의 작품이 도륙당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시인들 모임에서 흘러가는 얘기로 협회에 가입을 하고 돈을 지불하면 표절을 찾아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럼에도 저작권 협회에 가입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나 스스로 '누가 내 것을' 하는 겸손한 가치평가를 하기도 했고, 그보다 일단 책으로 출판되면 저작권을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해 전혀 위험성을 느끼지 않았는데, 그것도 같은 시인이 버젓이 출간된 책 속에서 훔쳐갈 줄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독자와 공감하고 싶은 욕구로 글을 쓴다. 그러나 그 후 나는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글 이 모아지면 책으로 출판하겠지만 '사유'를 강탈당한 상처는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선뜻 글을 발표하기가 꺼려지기까지 하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때의 표절시인은 문제의 출판사에서만 영구 발표를 금한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매체의 제재를 받지 않아서인지, 피해의식으로 움츠러든 나와는 반대로, 그 느슨한 틈을 활용해 주저 없이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 묻어둔 일을 이번'저작권 글 '공모를 계기로 꺼내보는 것은 '스타 작가'를 제외한 이 글을 읽고 계실 모든 작가님들의 작품이 표절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것과 '유명, 무명'을 떠나 작가의 창작은 발표한 때부터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그 외 응모를 위해서는 한 문장의 보탬도 쓰지 않았음을 밝힌다. 만 번을 돌아봐도 성찰 없이 남의 생각을 훔쳐가는 표절작가는 어떤 형식으로도 용인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보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준 표절자는 최소한 스스로에게 '절필'의 벌을 가할 수 있는 부끄러움이 살아있기를 호소하고 싶었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쓰는 것만이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 모든 작가님들의 문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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