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김순호 글

자살의 연구

느낌

by 김순호






자살의 연구 / 앨 앨버레즈 지음 / 최승자ㅡ 황은주 옮김



교보문고 매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제목이 주는 충격으로 선뜻 들춰 보는 걸 주저하면서도 어떤 끌림에 한 장 한 장 훑어나갔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이 책은 이미 40년 전에 판된 것을 원서 기준 50여 페이지 누락분을 추가한 국내최초의 정식 완역판이었다.


목차

머리말

1장 프롤로그 실비아 플라스

2장 자살의 역사적 배경

3장 자살, 그 폐쇄된 세계

4장 자살과 문학

5장 에필로그, 해방

원주(原註)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탄생과 죽음은 인생의 시작과 끝을 이행하는 과정이란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어차피 죽음은 오지만 우리는 살기 위해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견디는데 그걸 거스리는'자살의 연구'라니 실패 없이 '한 번에 성공하는 방법'을 제시해주기라도 한다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걸 상기하지 않더라도 왠지 읽고 있는 걸 누가 본다면 내 정신세계를 삐딱하게 볼 것 같다. 그것은 죽음을 터부시 하는 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데, 마침 이 책을 본 지인이 '애들이 보면 어쩌려고 이런 걸 보는 거야' 라며 제목이 안 보이게 책을 엎어버린다. 나는 제목부터 불편한 이 책은 카페에 들고 가면 안 되겠다 싶어 나만의 공간에서 비밀처럼 읽었다.


강렬한 제목처럼 자살의 방법을 가르쳐 주지도 미화하지도 않았지만 중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 철학 문학을 통해 시대마다 '자살'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 인간의 심리를 광범위하고 심도 있게 다뤄 깊이 머무르게 한다. 엄혹한 '신권과 왕권이 '지배했던 끔찍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의 행운이다. 근데 왜 제목을 '자살의 연구'라 했을까? 이건 내 생각이지만 문학과 철학에 중점을 둔 이 책은 '자살의 역사'가 더 맞을 듯싶었다.


나는 평소 1장 프롤로그에 쓰인 실비아 플라스(미국 1932~1963)와 그보다 적게 다뤄지긴 했지만 버지니아 울프(영국 1882~1941)를 떠올리면 자살로 마감한 두 천재 여성 문인의 비운에 가슴부터 아려왔었다. '울프는' 돌멩이를 주머니마다 가득 넣고 강물로 걸어 들어갔고, '플라스'는 가스오븐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충격의 장면을 플라스의 친구였던 저자 '앨 앨버레즈'는 이 책에서 담담히 쓰고 있다.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룬 제4장 자살과 문학에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와 문인 화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각 분야의 천재 예술가들은 하필 격변의 시대에 그렇게 많이 태어났고, 그 천재성을 자살로 완성해야 했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비감(悲感)에 잠겼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 묵직한 주제에 빠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싶어, 몇 ' 문장을' 옮긴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지독한 사기이다.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그 끔찍한 거짓 쾌활함과 친절과 평안, 가족 간의 즐거움을 외치는 떠들썩한 소리들이 외로움과 우울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든다. 68p


* 기독교 유럽에서 자살의 역사는 당국의 공식적인 분노와 개인의 비공식적인 절망으로 이루어진 역사였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법률가인 풀백은 1601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살자의 시체는 말에 이끌려 치욕의 형장으로 끌려가고, 거기서 교수대에 달아놓는데 치안판사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시체를 끌어내리지 못한다.

그로부터 시대가 흐른 뒤에도 역시 위대한 법률가였던 블랙스톤이 자살자의 시체에 말뚝을 박아 큰길에 묻었다. 자살자는 흡혈귀와 다를 바 없이 취급됐음을 알 수 있다. 91p


* 프랑스에서나 영국에서나 똑같이 자살자의 재산은 왕에게로 돌아갔다.

프랑스에서는 볼테르와 몽테스키외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이 법률이 1770년까지 존속했으며 18세기에 다다라서는 오히려 두 배로 강화되었다. 자살자의 재산 몰수와 사후의 명예 훼손은 마침내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사라졌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1870년까지 바뀌지 않았고 1961년까지만 해도 자살 미수자를 감옥에 보낼 수 있었다. 93p


*인간은 자신의 생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아무도 자살하지 않는다. 즉 자살자들은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세상일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167p


* 사람들은 일부러 , 즉 마음으로부터 잡념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과 집중'이라는 '판돈'을 건다. 227p


*단테가 『신곡』을 쓴 때는 14세기의 여명기였다. 자살은 그로부터 채 200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실질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주제가 되었다.『유토피아』에서 토머스 모어 경은 플라톤과 같이 자살을 일종의 안락사로 허용했다. 16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기독교의 설교가들이 여전히 이 범죄의 중대성을 엄중하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위한 죽음과 사랑을 위한 자살이 시인과 극작가들에게 흔한 소재가 되었다. 257p


*키르케고르는 매우 분명하게 일기에 썼다.

한 세대 전체는,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 쓰는 사람은 절망을 표현하고, 읽는 사람은 그것을 부인한다. 부인하는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더 나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쓸 수만 있다면 그들 역시 똑같은 것을 쓸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 모두가 똑같은 절망을 한다. 하지만 그 절망을 통해서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그것을 표현할 수고를 들일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절망을 극복했다는 것이 과연 그러한 것일 수 있을까? 363p


*키릴로프는 인간이 해낸 일이라고는 기껏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을 만들어 낸 것뿐이었다. 고 말했다. 만약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은 신을 거역하는 일이다. 이것은 자살이 대죄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퀴나스가 사용했던 논증 방법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인간의 의지는 인간의 생명이 된다. 이는 니체식의 허세를 담은 표현이 아니라 과장 없고 꾸밈없는 표현이다. 자살은 모든 윤리적 체계를 전환하는 축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사람은 훗날의 비트겐슈타인이었다. 371p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카프카가 자신의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길) 우리에게 불행처럼 작용하고,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이의 죽음처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며,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려 주는 도끼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4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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