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김순호 글

'죄'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보코프 롤리타 (감상문 )

by 김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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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여정을 따라가며 / 김순호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나보코프 소설『롤리타』의 첫 문장이다. 이보다 더 황홀한 사랑의 찬사가 있을 수 있을까


십여 년 전 읽었던 것을 다시 읽으며 문장 중 그땐 느끼지 못하고 흘려버렸던 '나의 죄'가 방점으로 찍혔다. 그것은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가 윤리와 도덕 즉, 자신의 광적인 행위의 죄의식에서 이성과 감성의 충돌로 겪을 고통과 탄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흔히 포르노그래피로 알려진 이 소설은 설정만으로도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충격의 소설이다. 그러나 '죄'의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선정적일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서정성 문장들이 시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워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그때마다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사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가 모국어를 쓰지 못한 비극의 시대를 살아냈으니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는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단지 읽기만 좋아하는 독자에 불과하다. 내 해독이 오독 (誤讀) 일 수 있으므로 다만, 속에서 나를 멈추게 한 문장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는 같은 작품 속에서도 각자 다르게 이해할 것이다.


소설은 험버트가 '롤리타'를 유혹해 탈출시킨 '퀼티'를 추적해 잔인하게 살해한 후 감옥에 구금된 상태에서 쓴 고백록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험버트의 소녀를 향한 집착의 불행은 실패로 끝난 첫사랑에 멈춰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애너밸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 때문에 그 악몽 같은 여름날의 좌절감이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것이 연애를 가로막는 영구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는 바람에 청춘을 쓸쓸히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안다. 25p


내가 마침내 애너밸의 마법에서 풀려난 것은 그렇게 24년이 흐른 후 그녀가 또 다른 소녀로 내게 나타나면서였다. 27p


돌이켜보면 내 젊은 날은 달리는 전망차가 일으키는 아침 눈보라인 듯 열차 승객의 눈앞에서 흩날리는 휴지조각처럼 창백하고 반복적인 파편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훌쩍 지나가버린 듯하다 27p


온갖 금기가 목을 졸랐다. 정신분석가들은 가짜 성욕을 해소하는 가짜 치료법을 권했다 내가 짜릿한 연정을 품으려면 상대가 애너벨의 자매이거나 하다못해 그녀의 몸종이나 시녀쯤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광기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또 어떨 때는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렸으며, 따지고 보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넋을 빼앗기는 성향이 그리 큰 잘못은 아니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32p


내 영혼의 진공은 그녀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남김없이 빨아들여 내 죽은 신부의 모습과 하나하나 비교해 보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잠시 후 이 새로운 소녀, 이 롤리타, 나의 롤리타는 그녀의 원형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는데, 내가 그녀를 발견한 것은 결국 고통스러운 내 과거의 '바닷가 공국'이 낳은 운명적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66p


롤리타는 이미 나의 유아론적 세계 속에 확보해 두었다 마음속의 태양이 마음속의 포플러나무 사이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이신성하고 환상적인 공간에 오로지 우리 둘 뿐이었다. 나는 일부러 억제시킨, 따라서 그녀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희열의 얇은 너울 너머로 금가루를 뿌린 장미처럼 은은히 빛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에 태양이 내려앉았다. 99P


나는 이제 사냥개 험버트 Humbert Hound가 아니다 곧 자신을 걷어찰 장홧발에 슬픈 눈을 매달리는 불쌍한 똥개가 아니었다. 온갖 조롱의 괴로움을 초월한 존재, 인과응보에 대한 두려움마저 뛰어넘은 존재였다. 99p


장차 어디로 가더라도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 지난날 내가 환희의 외마디소리를 토해가며 덮쳐 누르던 그 님펫에 비하면 지금의 그녀는 희미한 제비꽃의 잔향, 낙엽의 메아리에 불과했으니, 갈색으로 물든 낙엽이 시냇물을 막아버리고 메마른 잡초 속에서 마지막 귀뚜라미 한 마리가 노래할 때 저 멀리 창백한 하늘 아래 한 줌 숲이 보이는 황갈색 협곡 언저리에 맴도는 메아리..... 그러나 다행히 내가 숭배하는 것은 그 메아리만이 아니었다. 덩굴처럼 뒤엉킨 내 마음속에 제멋대로 자라나던 크고 찬란한 죄는 어느새 줄어들어 고갱이만 남았다. 447p


이윽고 내가 그곳을 떠날 때 딕에게 소리치는 그녀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개가 살찐 돌고래처럼 겅중겅중 뛰면서 내 차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지만 너무 늙고 몸도 무거워 금방 포기해 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저물어가는 저녁의 가랑비를 뚫고 달려가고 있었는데 , 앞 유리 와이퍼가 전속력으로 움직였지만 쏟아지는 내 눈물은 어쩌지 못했다. 451p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다리가 다섯 달린 괴물이었지만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비열하고 잔인했지만 , 간악했지만 , 무슨 말을 들어도 싸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했다! 그리고 때로는 네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고, 그때마다 지옥의 괴로움을 맛보았다. 나의 아이야 롤리타, 씩씩한 돌리 스퀼러, 458p




책을 덮으며 나는 서늘한 슬픔을 느꼈고 글자가 흐릿해지도록 눈꺼풀이 뜨거웠다. 그런 내가 의아하게 생각되면서도 롤리타를 잃은 주인공 험버트의 절망이 그대로 전해왔다. 분명 나도 소아성애자는 광적인 정신병자라 혐오하면서도 그러나 세상이 맞춤처럼 정체성마저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면 윤리와 도덕의 잣대로 심판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를 생각했다 보편성이 결여된 것이라 해도 진정한 감정이라면 이것은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정체성의 '죄'가 아닌가? 누군들 자신의 성향이 소아성애자이기를 바라겠는가 나는 '험버트 험버트'가 지속적으로 다른 님펫을 광적으로 찾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롤리타 만을 원했다는 간절함에서 험버트를 마음으로 변론해주고 싶었다. 불편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다수를' 정상이라 하고 '소수를' 비정상이라 하는 것이 사회가 내린 '정의'이고, '윤리이고, 도덕'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보코프는『롤리타』에 대하여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점잖은 분들은 『롤리타』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단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쓰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

다. 5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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