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더위로 한동안 광화문 시네큐브를 찾지 못했는데 오늘은 시간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 나선다.
도시는 매일 변한다. 가장 가깝게 직진으로 갈 수 있는 광화문 6번 출구가 캐노피 공사로 전면
폐쇄됐다. 반대편 5번 출구로 나가 신호등을 기다리고 긴 횡단보도를 건너고 하다 보니 예상
치 못한 시간이 소요돼 바삐 걷느라 온몸이 열기와 땀에 절었다.
시네큐브는 내가 아끼는 영화관으로 다들 아시겠지만 생수 외에 모든 음식물 섭취가 금지돼 다른
상영관처럼 팝콘냄새와 쩝쩝거리는 방해의 소리가 없어 쾌적하게 영화에만 몰입할 수 있는 곳이
다. 이날 관객은 약 20여 명으로 나처럼 대부분 혼자 오신 분들이었다.
나는 아무 정보 없이 그때그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데, 새로움도 충격도 집중력도 배가되기 때
문이다. 오늘도 역시 정보 없이 시간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 입장하기 전 잠시 포스터 앞에 섰다.
미세리 코르디아(Miseri cordia )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프랑스어로 자비를 의미한다고 한다.
많은 매체를 통해 영화의 줄거리는 전문가들이 자세히 소개했을 것이므로 나는 영화 속 특정 장면
에서 느꼈던 것들을 적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마치 내가 브레이크 없는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설명 없이 꽤 오
랫동안 깊어가는 가을 산야를 구불구불 달려 이야기가 전개될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멈춘다. 내닫는
화면으로 펼쳐지는 자연풍경은 오직 이것이 영화의 전부라 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싶게 아름다워 영
화관 밖에서 느꼈던 끈끈한 불쾌감을 일시에 잊게 한다.
미세리 코르디아' miseri'에서 웬일인지 오래전 미국 영화 미저리' misery'가 떠올라 이성을 향한 광적
인 집착을 연상했는데, 내가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퀴어 'queer' 영화로 각자 타인을 욕망하는 심리전
을 펼친다. 불편함을 예술로 승화시킨 낯선 세계를 엿본다.
안개 습습한 숲 속을 배회하는 주인공 제레미와 필리프신부의 잦은 마주침, 이어 등장하는 버섯, 아시다
시피 버섯은 남성을 상징하는데, 발아해 솟아오르는 욕정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신의 스승이자 첫사랑 (친구 뱅상의 아빠) 아들인 뱅상과 흔한 사내들의 장난처럼 얽혀 뒹굴다 살해까
지 한 범인 제레미가 사건의 현장을 다시 찾아 피 묻은 낙엽을 정리하며 채취한 버섯은 머리가 검은색을
띠고 있어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듯 괴기스럽다. 유독 시체가 묻혀있는 음습한 그곳에서 바구니 가득 버섯
을 채취한 신부의 메시지는 혼자 상상만 하기로 한다
뱅상의 실종이 제레미와 연관됐을 것이라 의심하는 신부가 성당의 고백소에서 제레미와 위치를 바꿔 고백
하는 장면은 정신과에서 치료로 채택하는 역할극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필리프 신부가 제레미와 숲에서 시체를 파내 성당지하 무덤으로 옮겨가는 섬뜩한 장면이나
범인을 은폐시키기 위해 수사관 앞에 발기된 알몸을 드러내면서까지 자신을 타락시켜 범인을 돕는 신부
의 파괴적 희생을 과연 보여지는대로 순수한 사제의 '자비'로 볼 것인가? 아니면 내면에 숨겨진 욕망의
'자비'로 볼 것인가? 관람자마다 심판의 소리는 다를 것이다.
밖으로 나와 다시 포스터 앞에 선 나는
포스터에 쓰인 이 문장이 바로 알랭 기로디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 욕망은 언제나 덤불 속에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