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2 묘 가정> 문득 올라오는 이 불안함은 뭐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휴일에 집에서 마음에 드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테이블 위에 커피 한잔과, 추우니까 가디건도 하나 걸치고서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장면은 어린 시절 내가 로망으로 생각했던 장면 중 하나다.
책상 앞에 앉아서 독서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끄적거리던 일을 좋아하던 나는
"앞으로도 나는 그러고 살겠다."
수시로 바랬고 늘 생각해 왔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뭘 하며 어떻게 살까, 누구와 살까.. 상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상을 참 많이 하며 보냈다. 그렇게 많은 상상을 해왔음에도 살다 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 놓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서른다섯,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올 때까지만 해도 나이 먹었다는 게 별로 체감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서른한 살이 되면서, 그러니까 만 나이로 정말 서른이 되면서 인생에 큰 고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겪지 않은 것도 아닌데 20대가 돼서도 방황을 많이 했다. 그런데 30대가 되어서 또 제3의 사춘기라도 온 걸까? 나는 내 앞에 모든 것에 흔들리기 시작했고 3년 정도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그리고 서른셋이 되면서부터 천천히 점차 정리되고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일들은 "삼십 대 직장인의 이면"에서 자세히 써놓았다. )
그리고 나는 지금 서른다섯 살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있기 마련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지금 적어도 내 세상의 또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길로 향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 주변인들 대부분은 현재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자녀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고민하며 늦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삼십 대 초반 중반쯤에 대부분 가정을 이루더라.
깜이와 사랑이다. 우리 집에 두 아들 녀석들. 우리 집에 데려온 날부터 나는 나를 새엄마라고 칭했다.
(고양이 친형제를 데려왔고 실제 어미고양이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아닌 새엄마다ㅎ)
그러다 보니 정말 두 아들놈 같이 느껴진다. 재밌는 건 내가 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문득 어릴 때부터 줄 곳 보고 자라온 남동생과 엄마의 대화, 행동들이 많이 묻어난다.
남동생은 나랑 두 살 터울인데 성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처럼 엄마랑 장난치는 걸 즐거워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를 놀리는 걸 즐거워한다.
일부러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반응하면 방긋방긋 웃으며 퇴장한다.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가 바느질을 하느라고 실, 바늘을 잔뜩 펼쳐놓았다.
오랜만에 아들이 집에 왔다고 단추가 가득 들어있는 단추통을 열어두고서 밥을 차리러 주방에서 한껏 바쁘다. 아들이 방에서 나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다 스멀스멀 거실로 향한다. 화장실로 가는 듯하더니 멈춰 서서 발가락으로 단추통을 슥 밀어 쏟을락 말락 위태롭다.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엄마한테 이른다.
"엄마 쟤좀 봐"
엄마의 시선이 남동생의 발가락 쪽으로 향한다.
엄마가 표정을 한껏 찌푸리며 말한다.
"아이~ 왜 그래~ 하지 마~!!!"
아마 엄마가 달려와서 말릴 때까지 하려나 보다. 남동생의 저런 해맑은 미소를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싶다.
예상이 너무 쉬운 엄마는 이내 발꿈치로 쿵쿵 뛰어간다. 단추통을 확 낚아챘다.
"이놈에 새끼! 쓸데없이 왜 단추통을 쏟으려 그래~~~ "
남동생은 엄마를 만족스럽게 한번 바라보고 머리를 쓰담쓰담 안더니 유유히 화장실로 사라진다.
엄마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허탈하고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돌아온다.
나는 엄마와 남동생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저 둘의 애정표현이구나 하고 느낀다.
우리 깜이와 사랑이도 나의 관심을 끌려고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야옹~ 하고 나를 부른다.
무언가 하느라고 무시하고 있으면 잠시 후 이번에는 가까운 곳으로 와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야옹~ 한다.
어떤 날은 간식통이나 괜히 쓸데없는 테이블 위 잡다한 물건들은 툭툭 쳐서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할 일을 끝마친 나는 우리 엄마가 아들한테 했듯이 이야기한다.
"우리 사랑이가 심심해서 엄마 계속 불렀어? 엄마 보라고 이거 떨어트려놨어~? 엄마가 할 거 다 하면 놀아주려고 했는데 왜구랬어~ "
한껏 안아주며 털에 얼굴을 파묻고 내가 이야기하면 눈을 게슴츠레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릉그릉그릉"
"기분 좋아~? 이리 와 엄마랑 놀자!"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호다닥 곁을 벗어나 바깥을 구경하거나 갑자기 사료를 먹거나 화장실을 가고,, 그루밍을 하다가 나른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더니 잠을 자버린다.
그런 사랑이를 바라보자니 저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저 놈의 자식, 도통 속을 알 수가 없네"
영락없는 엄마와 아들 모먼트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미혼의 30대 여성이다 보니 일하면서 오다가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나는 흥미로운 주제거리가 된다. 아마도 나를 보면 마구마구 조언을 해주고 싶나 보다.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해야지,," "자식을 낳으면 또 동물이 이쁜 것과는 다른 그런 기쁨이 있단다,," "지금까지 인연을 못 만나서 그렇지 만나면 또 달라,," "사람일 모르니까 너무 단정하지는 마,,,, "
아니, 하나같이 다들 맞는 말을 해준다. 맞다. 나도 안다. 내가 30대 초반일 때만 해도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져있는 일들이 너무 과하고 무겁게 다가왔고 이것만 해도 너무 벅차다고 느꼈다. 그런데 서른다섯이 되어보니 조금 있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겠네, 하는 생각이 들며 씁쓸해졌다.
어쩌면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어떤 미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더 넓게 생각해 보면 요즘은 예전에 비해 비교적 평균 결혼시기가 점점 미뤄지고 있고, 꼭 결혼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알아야 할 지혜와 깨달음이 있다면 이 세상은 온갖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주어 얼추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고양이와 살고 있는 것처럼..
물론 사람과 고양이는 다르다.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사람에게 겁이 너무 많아서 벽을 높게 치고 고집불통이니, 너의 그 두려움을 없애라고 하늘에서 고양이 선생을 보내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고양이랑 살면서 어느 날 오늘 같은 생각을 좀 해보고 자연스럽게 변화해 보라고, 그래서 보내주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가정이 생긴다고 매 순간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같이 살아서 힘든 일도 너무 많겠지... 혼자 살아도 힘든 인생 둘이 살아서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둘이 더 어려운 만큼 , 같이 해냈을 때 오는 기쁨이 두 배일 것이고, 슬픔을 나눈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응원하고 칭찬을 나누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고양이 아들들과 살면서 이제야 루틴이 잡히고 잘 살아가는 듯 하지만.. 나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사랑, 사람, 관계, 가족, 미래, 가정 이런 것을 체험하고 알고 싶은 욕구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싶고, 받고 싶다 나도 사랑을.
고양이들에게 아들내미 아들내미,
하다 보니 문득 -
엄마 아들 가족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
지금 서른다섯 살을 살고 있는 이 시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