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적응이 빨랐던 이유는

익숙한 냄새, 둘이 함께

by Lee


수술이 끝나고 드디어 집으로!

아직 마취기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고서 케이지를 살짝 열어줬더니 사랑이는 바로 근처에 있던 소파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마취가 덜 깬 사랑이


귀를 쫑긋 열어두고 웅크린졸고 있었다.

깜이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자리를 잡고 앉더니 졸기시작했다. 분명한 건 깜이가 사랑이보다 뭔가 여유롭고 괜찮아 보였다.

밖에서 볼 땐 몰랐는데 이렇게 집에서 보니 꼬질꼬질한 게 ㅎㅎ 목욕이 필요해 보인다.


집에 와보니 생각보다 꼬질꼬질했던 깜이.



깜이가 더 여유로워 보이는데는 사실 이유가 있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빠트린 이야기가 하나있다.


깜이는 우리 집에 왔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두 마리를 데려올 생각이 아니었다.

12월쯤 아이들을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를 가장 잘 따랐던 깜이만 먼저 집으로 데려왔었다.


그날 포획은 밤이었고 급작스러웠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발버둥 치는 깜이를 집으로

데려왔었다.


깜이도.. 모두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걸 알았던 걸까? 그때 깜이는 종일 울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화장실도 안 가고 숨어만 있었다. 그런 행동이 이틀간 이어지니 너무 두려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적응기간인데, 내가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불안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징크스가 하나있다. 항상 마음이 앞서는 나는 첫번째의 실패를 경험하고 차근히 준비한 두번째부터 첫단계를 시작하게된다. 항상 그 상황안에서는 모른다. 지나고 돌아보면 꽤 많은 순간 나는 이런 패턴을 반복해온 것 같다.


결국, 깜이를 이틀 만에 도로 데려다 놓았었다.

순둥하고 무딘 깜이여서 금방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원래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왔다가 다시 밖으로 돌려보내는 것 은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 그나마 깜이는 바깥에 집이 있고, 형제들이 모여있어서 그대로 잘 이어서 지냈던 거고, 다른 길고양이들은 사람 냄새가 묻어서 나가면 바깥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그리고 다시 3개월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 동안 정이 들어버린 형제 고양이 사랑이와 같이!

다시!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었다.


두 번째라 익숙해 보이는 깜이


집에 도착하고 나서 깜이가 보인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전에 집에 왔을 때 내내 숨어있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틀 동안 몰래몰래 탐색을 하고 돌아다녔을 거다.


3개월 동안 한층 더 가까워진 사람과, 와본 적이 있는 공간, 자기가 묻혀놓았던 냄새, 그리고 매일 붙어 다녔던 사랑이와 함께 왔으니 전 과는 다르게 익숙하고 편안했나 보다.

만져주니 곧바로 그릉그릉 거렸다.



마취에 들어가면서 소변이 나온건지 애들 몸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그래도 당일 중성화수술을 했으니 목욕은 못한다.

구비해 둔 목욕티슈가 있어서 겉에 묻은 진한 냄새라도 좀 닦아주었다. 그리고 편한 자리에서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마취기운에 자는 잠이지만.. 밖에서 부족했던 잠을 따뜻한 곳에서 충분히 자고, 깨어나서 집안을 천천히 편하게 구경했으면 했다.


그간 정말 오래 준비해 온 오늘의 일정...

"성공이다, 성공이야!"


자연스러운 깜이의 모습을 보니 이번엔 제대로 잘 온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집안 탐색을 시작한 고양이형제.


아이들이 자는 동안 나는 집 앞 카페에 다녀왔다.

너무 긴장하고 있던 탓에 이제 한시름 놓았으니 잠시 마음을 진정시켜야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깜이랑 사랑이가 멈춰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제 잠이 좀 깬걸까? 조심스럽게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들어오니까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얼굴을 보고 나를 알아볼까? 순간 궁금해졌다.

이렇게 행동하기전에 조심스러울 땐 고양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최고다. 이 아이들에게는 확인된 방법으로 알려주는 게 가장 좋다. 나는 밖에서 사료와 간식을 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을 거다.

매일 매일 내가 했던 행동들..

밖에서 하던 대로 쪼그려 앉아서 주섬주섬 츄르를 꺼내 그릇에 짜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둘이와서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빈다. 그리고 눈을 맞췄다.


"그래! 여기는 안전한 곳이야 얘들아. 너희들의 겨울은 이제 끝났어!!"



보일러의 맛을 알아버린 냥형제


보일러를 틀어놓았더니 가장 따뜻한 자리로 가서 철퍼덕 엎어졌다. 하루안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건 깜이가 밥을 먹자마자 화장실로 가 볼일을 봤다. 모래 덮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엔 이틀동안 물 한방울 안먹고 화장실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던 깜이다.

모든 건 때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원래 살던 집처럼 행동했다. 그러니 유심히 지켜보던 사랑이도 안심했는지 따라 들어가 화장실을 사용했다. 12월에 모습과는 딴 판인 깜이를 보고있자니 신기할 따름이다.

깜이야! 너 사랑이랑 같이 오려고 그랬구나?


꼬질했던 아이들을 목욕티슈로 전체적으로 그냥 한번 닦아준 게 다인데, 며칠이 지나고서 아이들은 점점 깨끗해졌다. 깜이의 본래 하얀 털이 더 뽀얀 색깔을 뽐냈다. 더 이상 오염되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열심히 그루밍도 하니까 점점 윤기가 났다. 슬슬 집고양이 티가 나기 시작했다.

숨숨집에서 낮잠 자는 깜이

한 동안 아이들은 징글징글하게도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아이들이 집을 낯설어하지 않았으면 해서 손수건을 두 개 가져가서 애들 얼굴 귀 턱 꼬리 냄새를 실컷 묻혀 가져와서 가구의 낮은 곳 여기저기에 묻혀놓았었다.

음.., 효과가 있었을까? 첫 인사를 코로 하니까 그래도 익숙한 냄새가 나서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는 폼이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처음엔 팔을 포개고 엎드려서 자기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냥 옆으로 누워잔다. 엎드려 자다가, 뒹굴뒹굴하다가, 팔을 쭈욱 뻗은채로 멈춰가지고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자기도 한다.


나른하게 쳐다보는 사랑이


밖에서 눈이 오거나 아주 추운 날, 꼭 붙어서 자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종종 같이 안고 자는 모습이 보인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는 알수없지만 뼈대나 덩치만 보아도 깜이가 훨씬 크다.

그냥 깜이가 형아라고 정했다. 깜이가 대범한 면이 있어서 경계상황에서는 항상 먼저 다가가 본다. 냄새를 맡거나 먼저 건들건들하고 있으면 사랑이가 다 멀리서 지켜보고있다. 깜이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안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니 깜이가 형아라는 나의 주장은 나름 근거가 있다.ㅎㅎ

침대에서 나란히 자는 고양이 형제


이렇게 시작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의 길.

앞으로 할 일이 아주아주 많겠지만 나는 머리가 복잡하지 않았다. 보통 할 일이 아주 많고,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 굉장히 신경질적이되거나 예민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인데,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모든 것들은 이제 순서대로 알아가고, 또 해내면 그만이고, (예방접종, 사료교체, 목욕, 손톱 발톱 잘라주기, 양치, 영양제 등등... 떠오르는 생각이 많기는 했다.)

간절히 원하던 큰 바람이 오늘 이루어졌으니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흐름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2022년 3월 4일! 이렇게 <매력점 턱시도 깜이, 애기호랑이 사랑이>와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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